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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1장 15절 | 골로새서 1:15-23 | 오직 예수! | 유기성목사 38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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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골로새서 1장

(골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 …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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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m.co.kr

Date Published: 7/24/2021

View: 438

2021/04/22(목) “골로새서 1:15-23” / 작성: 김광욱

우리는 완전하시고 탁월하신 주님을 믿기에 우리는 육체가 죽어도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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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9/8/2022

View: 4573

골로새서 1장 15절-23절, 예수님은 누구신가 – 구약장이

예수님이 아니라면, 아무도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케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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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11/30/2021

View: 3039

골로새서 1장15절 – <난해구절> – 설명드립니다. – 。기독교知性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 , 우리는 부활의 산증인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헛되고, 허망합니다.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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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8/6/2021

View: 50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골 1:15-20) – 유평교회

본문 : 골로새서 1장 15~20절. 설교자 : 최종혁.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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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church.or.kr

Date Published: 4/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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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1장15절~23절(영원한 창조주, 완전하신 구속주)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創造된 교회가 온전히 주님의 통치 가운데 있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 오직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순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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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2/19/2021

View: 9780

골로새서 1:15-23 (2016.06.17. 아침묵상) – 밴쿠버 새벽교회

말씀> 골로새서 1장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 15-17절 말씀은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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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voiceofdawn.tistory.com

Date Published: 5/18/2022

View: 1834

그리스도의 권위 – 골로새서 1:15-23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을 책임져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을 영원히 해결해 주실 수 있는 해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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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anincoc.com

Date Published: 8/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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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으뜸 (골로새서 1장 15절-20절 / 21.03.29)

골로새서 1장 15절-20절. 15절 :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절 :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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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tutfidem.blogspot.com

Date Published: 11/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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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1:15-23 | 오직 예수! |  유기성목사
골로새서 1:15-23 | 오직 예수! | 유기성목사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골로새서 1장 15절

  • Author: 유기성목사 강해설교
  • Views: 조회수 2,265회
  • Likes: 좋아요 53개
  • Date Published: 2020. 10. 1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Z69u9j1AvUA

2021/04/22(목) “골로새서 1:15-23” / 작성: 김광욱

[본문] 골로새서 1:15-23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골로새서의 본론은 크게 두 부분, 교리적 설명과 실천적 권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교리적 설명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성이란 인간의 능력이 아닌 신적 능력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교리적 설명을 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당시 골로새 교회를 위협하는 이단을 경계하도록 함입니다. 이단을 경계할 것을 바울이 가르칠 때, 이단들이 주장하는 항목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형식을 취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탁월성을 강조함으로써 성도들이 이단 사상의 허무맹랑함을 알도록 하였습니다. 어제 본문의 13절과 14절은,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속량하시는 구속자로서 탁월하신 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탁월성 세 가지를 더 증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창조주이신 예수님입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15-17절)]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딤전6:16).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눈에 보이는 형체로 나타나신 사건이 바로 성육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외적인 이미지를 가진 상태를 뜻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속성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라고 합니다. 이 설명을 근거로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라는 이단자가 기독교 역사 초기에 나타났습니다. ‘먼저 나신 이’에 해당하는 원어는 시간의 순서상 첫째 또는 지위의 서열상 첫째라는 의미가 있지만, 문맥상 또는 문법적으로 보면 모든 피조물과는 다른 이질성을 가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피조물과 다른 이질성을 가진 존재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16절에서 사도 바울이 ‘예수님은 창조주’이심을 설명합니다.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오늘날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심을 의심 없이 믿지만,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한낱 인간으로 보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아주 좋게 보아도 선지자 정도로 여겼습니다. 교회 밖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처럼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도 아니고 만물을 창조하신 신이라는 말은 믿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율법주의 유대인들과 이단들의 영향력을 받았다면 교회 안 사람들조차 믿음이 흔들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확고히 말합니다. ‘만물이 예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을 전부 예수님께서 창조하셨다’ ‘천사들을 포함해서 보이지 않는 것들도 예수님께서 창조하셨다’, ‘왕권들, 주권들, 통치자들, 권세들이 예수님의 손에서 창조되었고, 예수님을 위해 창조되었다’ 그러니까 바울의 설명은, 만물의 기원이 예수님께 있고 만물의 목적도 예수님께 있다는 말입니다. 만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존재합니다. 바울의 설명은 ‘예수님은 인성만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 신적 능력의 탁월성을 지니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입니다. 17절 역시 예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예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면 만물보다 먼저 계셨던 분임은 당연한 말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만물보다 먼저 존재하셨다는 선재성(先在性)이라는 사실 자체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선재성을 통해 예수님의 탁월성을 전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탁월하신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에서 ‘함께 섰느니라’는 ‘붙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만물을 붙들고 있다는 것은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만물은 예수님의 손에 의해 움직입니다. 해와 달과 별과 지구에 모든 생물과 무생물 등 만물은 예수님의 손에 붙들린 바 되어 운행됩니다. 다음 18절과 19절은 예수님의 탁월성을 말하는 둘째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입니다.

[교회의 머리시라(18-19절)]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입니다. 바울이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강조한 이유는 당시 교회에서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머리,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누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주님을 교회의 머리로 인정하지 않음이요. 근본이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만물의 으뜸이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근본’은 ‘시작’과 ‘처음’이라는 뜻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주님이심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는 신령한 육체로 부활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뜻이며, ‘으뜸’ 역시 최상급을 나타내는 말로써 유일한 존재이신 하나님을 뜻합니다. 다음 구절은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이신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충만’이라는 단어는 잔이 차고 넘칠 정도로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모든 충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두 위격이신 하나님께서 완전한 일체를 이루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물론 성령 하나님께서도 한 위격으로서 일체를 이루고 계십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을 말함으로써 예수님은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위하여 어떤 것도 행할 필요 없음을 역설합니다. 금욕도 필요 없고, 율법 준수도 필요 없고, 천사 숭배도 필요 없고, 그 어떤 것도 구원을 위한 인간이 할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완전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0-22절은 예수님의 탁월성을 말하는 셋째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화평을 이루사(20-22절)]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죄에 빠진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이 탁월하시다는 것을 바울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죄에 빠진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신 것뿐만 아니라 만물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이라’는 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인간 그리고 만물과 화목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심판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화목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화목이 필요하신 분은 주님 안으로 오십시오. 주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어떠한 죄에 빠진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피가 얼마나 놀랍고 탁월합니까? 다음은 하나님과 화목하기 전과 후의 상태를 알려줍니다.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1절은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기 전의 상태를 말하고, 22절은 화목한 이후의 상태를 말합니다. 과거 상태는 악한 행실로 하나님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그리므로 당연히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삶은 하나님의 원수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죄인임을 깨닫고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로 살아갑니다. 22절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첫째는 거룩해야 하고 둘째는 흠이 없어야 하고 셋째는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완벽히 갖춘 성도가 과연 존재하겠습니까?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성도가 이 땅에서 호흡이 끝날 때까지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정도에 이르기까지 성화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선다’는 뜻입니다. 훗날 하나님 앞에 설 때를 생각하며 현재 성화의 삶을 살라는 의미와 현재 매일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터 위에 굳게 서서(23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본문의 마지막 구절은 바울이 이단들의 거짓 가르침에 흔들리는 사람들을 고려해서 한 권면입니다. ‘믿음에 거하라’에서 ‘거하라’는 어떤 장소에 ‘지속적으로 머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집에 지속적으로 머무르며 밖으로 나갈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집 문밖에는 이단들이 유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터 위에 굳게 서라’, ‘흔들리지 말라’는 모두 거짓 가르침에 넘어가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적 능력을 가진 탁월하신 분이시기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 거하면, 순수한 기독교 진리에 불순한 거짓 요소를 섞는 종교적 혼합주의 등과 같은 거짓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구속자이시고, 창조주이시고, 교회의 머리이시고, 화목의 주님이시고, 탁월하신 예수님에 관한 복음은 당시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는 모든 지역에 전파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택 연금된 상태에 이르기까지 복음의 일꾼으로 살았습니다. 천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 복음의 일꾼으로서 바울이 강조하는 바는,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는 탁월하시기에 예수님 외 어떤 것도 덧붙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준수, 금욕, 천사 숭배, 지혜, 그 어떤 것도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완전하시고 탁월하신 주님께 나의 생각을 첨가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을 흔들지 마십시다. 오직 주님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주님만을 의지하십시다.

우리는 완전하시고 탁월하신 주님을 믿기에 우리는 육체가 죽어도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겪는 어려움과 환난이 믿음의 집에 거하는 자, 주님 안에 있는 자를 죽이지 못합니다. 오늘도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탁월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교회와 세상을 새롭게 하는 주님의 귀한 통로로 살아가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구속의 주님, 창조의 주님,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 화목의 주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외에 어떤 행위나 사상이나 ‘자기의(義)’가 구원의 조건으로 편승되지 않도록, 완전하시고 탁월하신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하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자로서,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정도에 이르도록 성화의 삶을 살아가며,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주님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2.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는 무슨 뜻입니까?

3.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하기 전과 후의 상태는 각각 어떻습니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4. 복음의 일꾼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5. 나에게 완전하시고 탁월하신 주님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작성: 김광욱)

골로새서 1장 15절-23절, 예수님은 누구신가 – 매일성경큐티 새벽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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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1장 15절-23절, 예수님은 누구신가

골로새서 1장 15절-23절, 예수님은 누구신가 – 매일성경큐티 새벽예배설교

오늘 매일 성경 큐티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울의 신앙고백에 대한 말씀인 골로새서 1장 15절부터 23절 말씀입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세 가지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예수님의 주되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고 예수님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여 새벽예배 설교로 나눕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23절, 예수님은 누구신가

설교 전 찬양

새 찬송가 80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 / 새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많은 설명이나 고백들이 있어 왔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하십니까?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뜻대로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찬양하고 영광을 높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으로, 어떤 이들은 바울이 고백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 찬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높이고 찬양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1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골로새서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하나님은 형상, 즉 어떤 피조물이든 그 모양을 본따서 만들고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어떤 형상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형상’이라는 말인 ‘εἰκών'(에이콘)은 여러 의미들이 있지만 15절에서는 ‘모습’, ‘동일한 존재’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요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고 형상을 온전히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 속에 나타난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본 사람과도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빌립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을 보고 경험하고 깨달은 성도는, 예수님을 본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본 그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모든 교회들의 머리가 되십니다. 18절입니다.

골로새서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시라고 고백하며 만물의 으뜸이라고 말합니다. ‘머리'(κεφαλή, 케팔레)나 ‘으뜸'(πρωτεύω, 프로튜오)이라는 말 모두가 뜻하는 것은, ‘첫째’, ‘가장 중요한 것’, ‘결정권을 가진 위치’입니다. 즉, 교회가 교회 되게 하고 교회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결정권을 가진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님의 피값으로 세우신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일사불란하며 서로를 격려하며 돕는 공동체가 되려면, 예수님이 머리가 되셔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라는 말은, 곧 주의 말씀대로 움직이는 교회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주의 말씀 속에 예수님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주의 뜻이 담긴 말씀을 사모하며 믿음의 생활을 해 나가십시오. 그것만이 교회가 든든하게 설 수 있는 방법입니다. 바라건대,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는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주의 말씀이 기준이 되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화목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형상이자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은, 또한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를 화목케 하신 중재자이심을 바울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2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골로새서 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인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이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는 중재자가 되셨습니다. ‘화목'(ἀποκαταλλάσσω, 아포카탈랏소)이라는 말은, 화해라는 의미입니다. 즉, 죄로 인해 원수 된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을 화해시키셨다는 의미입니다.

에베소서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예수님이 아니라면, 아무도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케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십자가 죽음으로 죄의 담이 무너지고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죄악된 세상이 화목케 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의 삶의 자리 속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교회의 머리시며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시는 분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내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기억하고, 오늘도 주의 말씀 따라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함께 할 기도

우리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복음을 전함으로써 세상의 빛이 되게 하소서. 우리 가정의 머리가 예수님이심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참고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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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1장15절 – <난해구절> – 설명드립니다.

골로새서 1장15절 :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 이요 모든 창조 물 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로새서 1장15절만 따로 떼어서 해석하면, 읽는 사람마다 오해의 여지가 발생하게 됩니다. 또한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는 <--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 이것을 오해하여서 예수님도 피조물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오해의 여지를 주지않기 위해서, 다음 구절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았다고 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 등장하는 말씀 " 만물이 그로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즉, 예수님께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여기서 이런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성부에 의해서 만들어진 피조물이다 <-- 이렇게 오해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오해하시는 이유는골로새서 1장15절을 그들의 문제로 삼아서 반론을 제기합니다. 골로새서 1장15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 모든 창조물 보다 먼저 나신 <--- "나신" 이라는 뜻을 ~에 손에 의해서 창조된, 만들어진 으로 오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한 구절만 따로 떼어 놓고 해석하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다음 구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골로새서 1장14절부터 ~18절까지>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5절의 하반부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8절의 하반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15절과 18절을 함께 보시면, 15절에서 “먼저 나신” 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먼저 나신” 의 의미를 영어버젼 (KJV) 로 보시면, firstborn 이 사용되었습니다.

뜻은 “최초로 태어난” , 첫아이 , ‘맏이’ , ‘장자’ 라는 뜻입니다. 이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첫열매가 되신,

맏아들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나신” 이라는 뜻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음이후에 첫부활의 열매로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

우리들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것은 지나갔습니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죽었던 우리의 영을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위로 부터 거듭난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고, 썩지 아니할 씨로 되었으니..항상 있는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고, 우리의 죄악된 모습과 예수께서 우리죄악을 대신해서

죽으신 것을 증거하셨습니다. 바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수여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부활의 첫열매가 되신, 예수님!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예수님” 을 기억하십시오!

아래 영어성경도 참조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15 Who is the image of the invisible God, the firstborn of every creature:

18 And he is the head of the body, the church: who is the beginning, the firstborn from the dead; that in all things he might have the preeminence.

바로 죽으시고, 부활의 첫열매가 되시는 예수님 , 장자로서의 “맏아들” 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맏아들” <-- 장자의 의미를 다시금 재확인해 볼 수 있는 아래 히브리서 1: 6절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6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 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찌어다 말씀하시며 < 이번에는 골로새서 1장 13절부터 23절까지 모두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위의 말씀을 천천히 읽어보시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그분의 계획에 따라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또한 죽음으로 부터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시어, 맏아들 되게 하심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예수님을 보십시오.

만물보다 먼저 계신 그분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 세상) 에 들어 오셔서 만물과 함께 서신 그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몸된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가 근본입니다. 우리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아버지와 함께 성령의 사역으로 함께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아버지와 원수되었던 우리들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분은 빛이시니,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빛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에 죄악된 인간은 결코 나아갈 수 없습니다.

유일한 길을 열어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자가 없느니라”

결국,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아버지께 나아갈 길이 열렸습니다. 또한,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습니다.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 , 우리는 부활의 산증인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헛되고, 허망합니다.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친히 만물의 으뜸이십니다.

이제 우리들을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보좌 앞에 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여서, 그분의 “아들들” 이 되고, 예수님은 “맏아들” 이 되어서, 영원한 천국에서

복을 누릴 것입니다. 또한 함께 앉게 하시어 다스리게 하실 것입니다.

자녀는 상속자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를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 신분까지 올리셨습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동안은 천사보다 잠깐 동안 못하지만, 우리가 죽음에서 부활한후, 우리는 천국에서

천사들보다 뛰어납니다. 천사는 피조물이데,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자들이고,

그리스도께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고 더욱 더 풍성하게 하심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까지 올리셨습니다.

천사들이 우리들을 돕고 , 수종들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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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님들, 우리가 빚진 자입니다. 우리 육신의 정욕대로(=자신의 의지와 욕심대로) 살지 맙시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만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들(=자녀) 입니다.

우리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았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또한 성령께서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크리스챤) 이 하나님 자녀인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요 상속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위해서 고난도 받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세상에서 손가락질 당하고,

바보, 어리석다 라고 취급당하여서 지금 받는 그러한 고생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가 우리에게 톱으로 썰고, 돌팔매질 하며, 불에 태워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나요?

얼마나 편한 세상인지 모릅니다. 참읍시다! 견딥시다!

보십시오. 피조물 (세상의 모든 식물,동물,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그들이 죽고 썩어서 부패하는 냄새가 가득합니다.

이들 또한 우리들 (하나님의 자녀)과 같이 이러한 것에서 해방되어서 영광의 자유에 이른다고 합니다.

피조물도 함께 탄신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우리들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그리스도인) 들도 속으로 탄식하면서 양자 될 것 곧..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립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우리를 그분의 사랑의 나라로 옮기우실 것입니다.

앞으로 올 영광에 비하면, 지금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비교했을 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도바울과 같이 우리들도 하늘의 부름을 좇아서 그 상을 위해서

달음질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성경말씀을 항상 가까이하고, 말씀으로 무장합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골 1:15-20)

주제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본문 : 골로새서 1장 15~20절

설교자 : 최종혁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을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그런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예수가 최고인지 누가 모르냐!’고 반문하면서 좀 더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하자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반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 자체에 예수님에 대한 책입니다. 구약에서 오실 예수님을 말하고, 신약에서 오신 예수님과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럼 성경은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실제로 사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일까요? 실제적으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은 이론적인 책일까요? 그냥 지금 사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든 잘, 지혜껏, 힘껏 살면 되는 것일까요? 정말 예수님은 우리가 천국가는 데만 필요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예수님의 위대하심은 그냥 ‘예배 시간’에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때에만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생각하고 실제로 살아갈 때는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위대하심은 곧 예수님으로 ‘충분함’을 의미합니다. 단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살 때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생을 누리는 삶,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위대하심, 그분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때에 실제적으로도 직장과 가정에서, 교회에서 등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탄은 여러 가지로 교회를 핍박합니다. 사탄이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는 여러 방법 중 현재까지 그 효과가 입증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위대하심과 충분성을 구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놀랍고 위대하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생각해 봐야하고 이런 것도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하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위대하신 예수님 말고 다른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이단적 사상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그리스도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위대한 것은 맞는데, 그 외에도 이런 저런 것들도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무언가를 더 쌓아야 진정한 그리스도인, 혹은 한 차원 더 높은 그리스도인이 될 것처럼 말했습니다. 후에 영지주의라고 알려진 이단적인 사상의 싹이 이미 교회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외에 너희에게 더 필요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너희의 실제 삶도 달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골로새 교회와 비슷한 상황에 있습니다. 다들 예수님은 위대하신 분이라고 말하고 최고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또 다른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다른 지혜가 필요하고 사랑과 위로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상은 이상이고 이론은 이론일 뿐, 실제 삶은 다르다고 말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으로는 충분하지 않아.”라고 삶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위대하심은 곧 예수님으로 충분함을 의미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부분을 살펴 보기 원합니다.

본문은 간단히 말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분하기에 따라서 몇 가지 답을 찾을 수 있겠지만, 두 가지로 정리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다(15~17절) 예수님은 새 창조의 주님이시다(18~20절)

예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다(15~17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15절). 여기서 말하는 “그”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형상’이라고 했으니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은 아니라는 말일까요? 이 말의 의미는 2장 9절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 2:9).

하나님의 모든 성품이 예수님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육체로 거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이신데 형상으로 우리 눈에 보이게 나타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기자도 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히 1:3).

예수님을 하나님을 닮은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만 하셨던 것은 아닙니다. 그분 안에는 모든 하나님의 성품이 빠짐 없이 거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어떠하심은 그 피조물 속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롬 1:20). 피조물들이 나타내고 있는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예수님이 나타내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은 어떻게 다를까요?

특별히 인간은 가장 하나님을 닮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죄가 들어오기 전에 조차도 인간은 완벽한 하나님의 형상은 될 수 없었습니다.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 비추는 것처럼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부분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완벽한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신격화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신화 같은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0:30-33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이 맞습니다. 거짓말이고 속임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서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계시입니다. 유대인들의 이런 반응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본래 ‘보이지 않는 분’이 맞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보고 있는’ 예수님은 하나님일 수가 없다고 그들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셔서 보이지 않는 분이시지만 또한 자신을 나타내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데, 아들을 통해서 가장 완벽하게 나타내셨습니다.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을 본 자는 곧 하나님을 본 것과 같았던 것입니다.

요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아무리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이라도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많이 닮은 사람도 자신을 보면 예수님을 본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기에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드러내셨다는 부분보다는, 예수님이 우리 눈에 보이게 임하셨지만 그분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같이 되셔서, 그분을 눈으로 본 사람들은 단지 보이는 것으로는 어떤 특별함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 행동, 성품에서 하나님이 드러났습니다.

바울은 피조물과의 관계를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설명합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예수님이 첫 번째 피조물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먼저 나신”은 시간적으로 최초의 출생을 의미할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지위나 신분의 뛰어남을 의미하는 단어입니. 우리말의 ‘첫째’도 비슷합니다. 그렇게 말할 때 순서상 첫 번째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최고, 으뜸의 의미도 있습니다. 여기서 먼저 나셨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신분 상 뛰어나다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 “내가 또 그(다윗)을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시 89:27)라는 표현은, 단지 시간적으로 먼저 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모든 민족들 중에서 하나님께 특별하고, 다윗이 모든 왕들 중에서 하나님께 특별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위치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이 말씀은 예수님이 피조물 중에 가장 먼저 창조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나신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럼, 가장 뛰어난 피조물이라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16절) 창조한 사람은 만물이 아닌 것입니다. 곧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니라 피조물을 창조한 창조주이신 것입니다. 바울은 16절과 17절에서 계속해서 ‘만물’과 예수님을 함께 언급하며 그 관계를 말합니다. 16절에서는 만물과 예수님을 창조 사역의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만물은 그“에게서” 혹은 그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예수님 밖에서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과 관계없이 창조된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혹은 그를 “통해서” 창조되었습니다. 창조 사역에 있어 성부 하나님께서 그것을 작정하시고 계획하셨다면, 그 일을 실행하신 것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성자)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2)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힘과 능력으로 세상은 창조되었다는 말입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요한은 또한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창조된 것은 없습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것이 예수님을 통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만물은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모든 것의 존재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스스로 있는 자’가 아니라면 ‘창조된 자’이고 그렇다면 나의 존재 목적도 예수님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선포하는 것이 모든 피조물의 존재 목적입니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예수님과 만물의 관계는 이렇듯 명확합니다. 모든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존재하게 되었고 그래서 예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께 속해 있습니다. 나에게 속한 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하고 내가 원하는 목적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만물에 대해서 그런 권리를 가지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16, 17절에서 저자가 반복해서 분명하게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만물’입니다. 풀어 쓰면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이 만드셨고 그분을 위해서 있다고 말하는데, 이 ‘모든 것’에 포함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만물에 포함됩니다. 하늘과 땅이니까 바다에 있는 것은 빠지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시적인 표현으로서 모든 우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볼 수 있든지 볼 수 없든지,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밤하늘에 보는 수많은 별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낮을 환하게 비추고 온기를 전달해 주는 태양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먹는 식물과 동물을 자라게 하는 비도 포함되어 있다.

내 주변의 사람들, 내가 포함되어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예수님이 창조하셨고 그 모든 것들이 예수님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들 중에서 바울은 특별한 존재들을 언급합니다.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비슷한 표현이 2:15에도 나옵니다.

골 2: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그냥 읽으면 인간 왕들, 정치지도자들을 말하는 것 같지만, 세상의 지도자들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 표현은 ‘천사들’의 여러 범주를 지칭합니다. 아마도 천사들의 체계를 지칭하는 표현일텐데, 성경에서 딱히 어떤 순서를 찾기는 어렵습니다(cf. 롬 8:38; 엡 1:21; 벧전 3:22).

그럼, 바울이 여기서 갑자기 천사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뒤에서 이런 천사들을 십자가로 그리스도께서 이기셨다고 말하며 ‘천사 숭배’(골 2:18)의 무의미함에 대해서 말합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에 들어왔던 잘못된 사상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이르기 위해, 혹은 더 높은 영적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천사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천사들 중에 뛰어난 천사라고 주장하는 이단적 사상이 교회 안에 침투해 있었고, 바울은 절대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편지의 시작에서 밝히는 것입니다. 당시 성도들은 예수님만 최고라고 생각하다가 다른 천사들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이단사상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천사와 다릅니다. 천사는 ‘만물’에 포함되지만, 예수님은 그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다시 이렇게 정리합니다.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17절)

예수님은 만물보다 먼저 계셨습니다. 모든 것이 창조되기 전,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이십니다. 그 말은 그분이 곧 창조주이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요 1:1-2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아주 오랜 옛날)에, 영원에 있느니라

단지 먼저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만물보다 먼저 계셨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은 ‘만물’ 즉 피조물의 일부가 아니라는 말이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피조물과 창조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함께 붙들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만물을 붙들고 계신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만물을 존재하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으시고 움직이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계속해서 그들을 붙들고 운행하시는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그 일을 멈추시면 만물은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크게는 거대한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별들을 정확하게 운행하게 하시고, 작게는 작은 먼지, 분자, 원자 하나까지도 주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그런 분이십니다.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잠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런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창조주라고 할 때, 그저 나를 만드시고 나를 잘 아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라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가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생각은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합니까? 예수님의 위대하심, 다르심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와 다른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창조주시고 절대적인 주권자이십니다. 내가 아는 그 어떤 위대한 존재보다 위대한 분이십니다. 그 어떤 힘보다 강하신 분이십니다. 그 어떤 지혜보다 지혜로운 분이십니다. 이런 분을 두고 다른 무언가를 의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요! 다른 무언가를 의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무엇이든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면 피조물입니다. 예수님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피조물로 창조주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피조물로서 창조주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들의 죄의 근본에 있었습니다(롬 1:23. 25). 믿고 구원 받은 자들이 여전히 같은 생각에 사로 잡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창조의 하나님으로 믿는다면, 그분으로 충분함을 알고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바울은 좀 더 믿는 자와 예수님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서 말합니다.

예수님은 새 창조의 주님이시다(18~20절)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18절)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이어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물의 창조주에서 교회의 머리로 범위가 좁아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18절 끝이나 20절 중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여전히 모든 만물과 예수님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은 언젠가 끝이 날 것입니다. 사실 15~17절까지 말씀만 보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은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선하신 예수님께서 주권자이신데, 어떻게 이 세상에는 고통이 있고 슬픔이 있을까?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 수많은 악한 일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와 같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고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인 주권자이심은 사실입니다. 주권자이신 예수님이 모르시는 일, 허락하지 않으신 일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분의 통치에 반기를 든 존재들이 있습니다. 사탄을 비롯한 타락한 천사들,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른 우리 인간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내버려 두시고 허락하신 상태입니다.

죄가 피조물 안에 들어 왔고 그것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죄로 인해 망가지고 뒤틀린 모든 것들이 바로 잡힐 날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바로 잡을 때가 옵니다. 궁극적인 완성은 미래의 일이지만 이미 그 일은 시작되었습니다. 그 일의 핵심이 예수님의 성육신, 죽으심, 부활, 승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일에 동참할 자들이 바로 지금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자들,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을 새로운 창조로 말하기도 합니다. 죄로 인해 망가진 피조물들이 그리스도로 인해 다시 회복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만물의 창조주로서 만물의 근본이 되시고 주인이 되신 것처럼, 새 창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세 가지로 표현합니다. “머리”, “근본”, “먼저 나신 이”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신약 성경은 교회를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건물이나 집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 중 바울이 자주 그리고 중요하게 사용한 표현은 ‘몸’입니다. 교회는 어떤 기관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각자가 다르지만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이 이 표현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특별히 여기서 예수님을 그 몸의 머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몸과 머리의 관계입니다. 몸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머리가 공급한다는 것입니다.

골 2: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몸에 모든 필요를 머리가 공급한다는 것입니다. 피조물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처럼, 새로운 피조물인 교회의 모든 필요도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몸에 하나의 머리가 있는 것처럼 교회의 유일한 머리가 예수님이십니다.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반대로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 비교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아내가 남편을 통해 채워야 할 어떤 필요를 다른 사람을 통해 채우고 있다면 어떨까요? 정상적인 부부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실 사람은 완전하지 못해서 어떤 필요는 다른 사람을 통해 채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완전합니다. 충분합니다. 그것이 19절에서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그런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울 수 없습니다. 그분이 머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근본이시요”

예수님이 교회의 시작이십니다. 친히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를 존재하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심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시작이십니다. 우리 생명의 시작이시고 진정한 삶의 시작이십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먼저 나신 이”는 15절에 나온 단어와 동일한 단어이고 동일한 의미입니다. 순서상 먼저가 아니라 가장 뛰어나고 특별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이전에도 부활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구약에도 있었고, 예수님도 죽은 자들을 살리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죽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의 부활처럼 믿는 자들도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서 바울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으뜸됨’입니다.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단지 ‘교회’의 으뜸이 아니라 ‘만물’의 으뜸이십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넓은 의미에서 예수님은 이미 으뜸이시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앞으로 진정한 으뜸이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해서 일어난 세력들을 지금은 허락하고 계시지만, 언젠가 그 모든 것들을 바로잡으시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왕이 되실 때가 옵니다.

엡 1:20-22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cf. 빌 2:9-11)

비단 믿는 자들 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 위에 예수님의 주권이 실현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교회만의 으뜸이 아니라 만물의 으뜸이 되십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18절 말씀의 근거를 제시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시고 근본이시고 부활하셔서 만물의 으뜸이 되시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두 가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행하신 일을 말합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완전한 하나님, 완전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일, 즉 성육신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구속 사역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19절)

모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빠진 것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아가기에 예수님이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당시 골로새에 들어온 이단적 사상의 하나는 하나님께서 여러 존재들을 통해 그 신성을 나타내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섬기지만 여러 뛰어난 천사들도 섬겨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거합니다. 다른 어떤 통로가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교회의 필요를 아시고 그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모든 것이 그분에게 있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20절)

참 감사한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에 대해 말했던 것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만물의 창조주, 주관자가 만물을 그 발 아래 무릎 꿇게 하고 복종하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하필 부활이라는 것을 통과해서 그렇게 하실까요? 그냥 무릎 꿇리지 않으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해야 한다는 것은 먼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원하셨습니다(사 53: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죄와의 싸움을 끝내고 이제 그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화목하게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 이것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평화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자발적 평화가 있고 강제된 평화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 우리가 스스로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무릎 꿇게 되는 날이 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교회의 으뜸이신 이유는 그들이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예수님은 만물의 으뜸이 되실 것입니다. 만물이 그 발 아래 복종하고 모든 입이 예수를 주라 시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 가운데 그렇게 할 것이고, 누군가는 심판의 고통 가운데 그렇게 할 것입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지 않으신 분들은 늦기전에 주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미 예수님을 지금 주로 고백한 자들은 예수님이 새 창조의 주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살리셨고 구원하셨고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우리에게 예수님 아닌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 대한 순종과 그분으로 인한 만족이 필요합니다.

도전

누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는가? 누가 우리를 포함한 모든 만물을 세상에 존재하게 하였는가? 누가 만물을 붙들고 다스리고 있는가? 누가 만물의 존재 목적을 제시하는가? 예수님이십니다.

누가 교회의 머리가 되어서 교회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는가? 누가 교회의 시작이 되어서 교회를 존재하게 하셨는가? 누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서 모든 만물의 으뜸이 되시고 그 발 아래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가? 누가 하나님과 원수가 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가? 예수님이십니다.

복수정답도, 유사정답도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모든 질문의 유일한 답입니다.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으로 충분하십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위대한 분이시라면 그분으로 충분해야 합니다. 다른 즐거움, 다른 만족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른 위로도 지혜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 삶을 살아가는 다른 방법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그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1:16절). 우리는 “그 안에서” 구원 받았습니다(1:14절). 그래서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2:6).

특별히 우리는 교회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고, 그리스도 아닌 것으로 기뻐하려 하고, 그리스도보다 다른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가 위대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말하는 복음을 누가 믿겠습니까? 그런 부모가 말하는 그리스도를 자녀가 따르겠다고 말하겠습니까? 오늘날 복음이 힘이 없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과 같아서입니다.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이, 그분으로 충분함을 인정하는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 가운데 선포되기를 원합니다.

골로새서1장15절~23절(영원한 창조주, 완전하신 구속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새롭게 창조하셨다. 바울은 13~14절에서 아들의 나라를 구속과 죄 사함으로 설명했는데, 이어 찬송시에서는 아들이 만물을 창조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한다. 구속과 창조는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실체를 다른 각도에서 본 모습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도 깨달아야 하지만, 그 구원이 사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찬송시는 또한 그리스도로 인한 충만함과 화평을 언급한다.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충만함을 실현하시고 화평을 성취하신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그분을 찬송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원으로 점점 온전히 자라가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성취하신 화평을 성실히 실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전의 엉터리 삶의 모습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바울은 이 점을 분명히 확인시킨다. 믿음으로 분명히 서고, 복음을 깨달음으로 나아간 소망의 자리를 든든히 지켜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소망은 곧 거룩한 삶과 화목和睦의 관계를 이루는 터전이다. 이 삶을 사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실한 사람들이다.

15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확신으로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옵소서. 골로새 교회의 많은 성도가 이단의 교리에 현혹되었음을 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대속의 은혜에 흠집을 냈습니다. 우리 모두 복음의 진리 위에 굳게 세워 오늘날 이단들의 미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창조의 능력으로 모든 만물을 붙들고 다스리고 계심을 고백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創造된 교회가 온전히 주님의 통치 가운데 있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 오직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순종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오늘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 두란노QT

밴쿠버 새벽교회 :: 골로새서 1:15-23 (2016.06.17. 아침묵상)

<말씀>

골로새서 1장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나눔>

1. 오늘 말씀은 어제 말씀에서 이어집니다. 어제 말씀에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 교인들을 위해 크게 세 가지로 간구했습니다. 첫째는 더욱 하나님 알기를, 둘째는 더욱 합당한 삶 살기를, 셋째는 더욱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이 간구를 마치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했습니다.

2. 오늘 말씀은 그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지를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찬가라 부르며 초대교회부터 고백한 예수님을 향한 찬양이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오늘 말씀은 곰곰이 읽으며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마음 속 깊이 고백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워지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친히 자신이 고백하는 것을 통해서, 골로새 교인들도 이 고백을 함께 고백하길 원했습니다. 우리 또한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소망합니다.

4. 15-17절 말씀은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시자 이세상의 모든 것들 보다 먼저 계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요,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지만 본질적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5. 18-20절 말씀은 예수님이 구원의 주님이시라는 점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보혈로 하나님과 세상이 다시 화해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죄 사함의 죽음이었고, 용서의 죽음이었습니다. 대신 갚아주신 죽음이었고, 대신 심판 당하신 죽음이었습니다. 관계 회복의 죽음이었고, 사랑의 죽음이었습니다. 악을 선으로 갚아주신 죽음이었고, 온전한 순종의 죽음이었습니다.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신 죽음이었고, 부활 승리를 선언한 죽음이었습니다.

6. 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다시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온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복된 자들을 모아 교회를 이루시고, 성령님께서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 복음이 온 세상에 드러나도록 일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교회의 머리가 되어 교회를 통치하십니다.

7. 21-23절 말씀은 우리가 해야 할 길을 다시금 가르쳐 줍니다. 이전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존재였음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기억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 보혈로 우리가 거룩한 사람들이 되었음을 기억할 것을 요청합니다.

8. 이 기억 위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믿음 위에 굳건히 서고, 복음의 소망을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누리고, 복음의 소망 위에서 어떠한 어려움도 기쁨으로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9. 바울은 이 복음을 위해 애쓰고 있음을 넌지시 고백하며, 자신의 가르치는 복음을 따르고 우리 역시 이 복음의 길로 나서길 요청합니다.

10.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합니까?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 우리의 창조주 되신 예수님, 우리의 모든 삶을 인도하시고 하나님 나라 가운데 살게 하실 예수님,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허락하시고 영원한 부활 생명을 살게 하실 예수님,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모든 우상을 무너뜨리시며 우리의 참된 주인 되시는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소망합니까? 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하루되길 소망합니다.

11. https://www.youtube.com/watch?v=v_pmBHNgD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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