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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행전 9 장 | 사도행전 9장 38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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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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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제공 : CGN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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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

사도행전 9. … 제 9 장 …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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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9/12/2021

View: 4039

사도행전 9 KLB – 사울의 개종

사울의 개종 – 한편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하고 죽일 기세로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마스커스의 여러 회당에 보낼 공문을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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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8/20/2021

View: 3094

사도행전 9:9 – 다국어 성경 Holy-Bible

사도행전 9장 ·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 사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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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11/17/2022

View: 4202

2020/09/30(수) “사도행전 9:1-19a” / 작성: 이대은

스데반과 빌립을 통해 세계선교의 장이 열렸음을 보여주고, 이제 그 주역이 될 두 인물의 회심을 제시하는데 9장에서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는 사울이 회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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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8/5/2021

View: 3997

사도행전 9장 말씀 묵상 – 복음뉴스

사도행전 9장 – 묵상’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사도행전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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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ogeumnews.com

Date Published: 10/20/2022

View: 5802

쉬운성경 사도행전 09장

9:1 <사울의 회개>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그들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9:2 다마스커스의 여러 회당에 보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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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7/27/2022

View: 5440

[사도행전 9장 – 문제와 해답]

사도행전 9장. 1. 다메섹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도시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지금은 무엇이라고 불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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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10/14/2022

View: 9055

사도행전 9장 1-9절

사도행전 9장 1-9절.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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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eleoulos.tistory.com

Date Published: 12/25/2022

View: 2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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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장
사도행전 9장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사도 행전 9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 Views: 조회수 15,98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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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2. 1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j97D0vF_i4c

사도행전 9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1)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2)침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서 전도하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020/09/30(수) “사도행전 9:1-19a” / 작성: 이대은

[본문] 사도행전 9:1 – 19a

[찬양] 334장 ‘위대하신 주를’

8장 초반에서 사울을 전면에 등장시킨 누가는 빌립의 전도 여행을 다루며 잠시 그를 무대 뒤편에 감췄다가 다시 9장에서 사울의 회심을 극적으로 그려냅니다. 스데반과 빌립을 통해 세계선교의 장이 열렸음을 보여주고, 이제 그 주역이 될 두 인물의 회심을 제시하는데 9장에서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는 사울이 회심하고, 10장에서는 고넬료가 이방인으로는 최초로 회심합니다. 제자들이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함께 읽은 소위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은 성경에 등장하는, 그리고 기독교 역사상 그 어떤 회심보다도 극적이고 유명한 사건입니다.

누가는 사울의 회심을 사도행전 9장과 22장 26장에 걸쳐 세 차례나 기록합니다. 9장에서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22장과 26장에서는 바울이 직접 전한 설교의 내용을 따오는 식으로 서술했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같은 사건을 세 번이나 기술했다는 사실을 볼 때 누가가 사울의 회심이 사도행전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독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건으로 여겼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실 은혜를 사모하며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살기 등등한 사울(1-2절)]

1절 말씀을 보면 사울은 스데반을 죽인 이후에도 여전히 주의 제자들에 대해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을 찾아가 외지에 퍼진 그들을 잡아 올 수 있도록 권한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다메섹은 현재 시리아의 수도로서 예루살렘에서 약 240km 떨어진 곳입니다. 다메섹은 창세기부터 등장하는 고대 도시로서 유대와 오랜 인연이 있었기에 당시에도 많은 유대인이 여러 회당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이곳까지 흘러간 자들까지 끌고 오겠다는 일념으로 일주일 정도가 소요되는 먼 길을 떠납니다. 1절에서는 그들을 주의 제자들이라고 표현하고 2절에서는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가 등장하기에 앞서 나타나는 독특한 호칭입니다. 특히 ‘도’란 사도행전 6장 7절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는 말씀에서 도에 해당하는 피스티스, 즉 믿음이 아니라 요한복음 14:6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실 때 길에 해당하는 호도스입니다. 즉 누가는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을 따르는 자들을 잡아서 폭력으로 제압하려고 찾아갔지만, 오히려 다메섹으로 향하는 길에서 사울이 은혜로 제압되어 참된 길을 찾았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울과 예수님(3-9절)]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다메섹에 거의 와가는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내려 그를 둘러쌉니다. 사도행전 26장에서는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왔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22장에서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울은 땅에 엎드러지고 맙니다. 그 순간 음성이 들려옵니다.

[(4-5)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아 사울아 라고 부르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름을 두 번 부르는 양상이 마치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부르신 하나님을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의 현현입니다. 사울도 이를 분명히 의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 압도적인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뜻밖의 말을 듣게 됩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상한 말이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박해했다니. 그래서 묻습니다.

주님, 도대체 누구이십니까? 모세의 물음과 동일합니다. 그러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하십니다. 성경에는 사울이 예수님을 박해한 기록은 물론 마주쳤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교회와 그 구성원을 박해한 사울에게 나를 박해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울은 이상한 방식으로 자신을 제자들과 동일시하시는 주님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따라서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가르침은 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음성은 시내로 들어가 기다리라고 명하였고 사울은 그대로 따릅니다.

[(8-9)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사울은 엎드러졌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눈은 떴지만 보이지 않아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에 들어갑니다. 자신의 힘과 지식을 믿고 기세등등하게 찾았지만 앞가림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그곳에 들어섭니다. 거기에서 3일 동안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였습니다. 보지 못한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기 의지에 따라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울이 엄청난 내적 갈등을 겪으며 주님께 부르짖고 있었음을 입증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다른 인물을 준비시키십니다. 바로 아나니아입니다.

[사울과 아나니아(10-19a절)]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사도행전 22장에서 아나니아는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에게 칭찬을 듣는 자로 소개됩니다. 아나니아는 아마도 사울이 가장 먼저 잡아갈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환상 중에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부르시고 명하십니다.

[(11-12)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주님은 직가, 즉 곧은 길이라고 부르는 다메섹 시내 중심 거리에 위치한 유다의 집에 가서 사울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가 기도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기도로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에게는 아나니아가 안수하여 다시 보게 되는 환상을 보여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사울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 자초지종을 모르는 아나니아는 반문합니다.

[(13-14)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아나니아는 완곡하게 반대 의견을 냅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사울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나니아는 신중한 인물로서 단편적인 정보가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들어보니 사울이 주의 성도들에게 큰 해를 끼쳤으며, 여기에서도 대제사장들에게 사람을 잡아갈 권한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라고 자신이 아는 바를 겸손하게 아룁니다. 이해할 수없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경건한 자가 취해야 할 마땅한 자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15-16)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주님은 그에게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사울은 예수님의 이름, 즉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복음이 어떠한지를 선포하고 고백하는 사역을 위해 특별히 택한 자임을 밝히십니다. 그는 여러 지역의 이방인들 및 아그립바 2세와 로마 황제 앞에서,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사울이 단지 이방인을 위한 사역만을 행하도록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릇이란 사울이 특별한 기능을 행하는 사람임을 의미하는데, 사실 그릇은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그 기능이 달라집니다. 그릇에게는 자기 주권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사울 역시 자신이 질그릇과 같은 존재에 불과함을 잘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하지만 그의 삶은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는 말씀을 입증하는 삶이었습니다. 골로새서 1:24에서 사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의 삶은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사명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고난을 채우는 그릇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나니아가 사울을 찾아가 만납니다.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아나니아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사지가 될지도 모르는 그곳을 찾아가 사울에게 안수합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사울아. 이 말이 얼마나 사울의 귀에 아름답게 들렸을지 모릅니다.

[(행 22:13-16)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왜 주저하느냐는 말을 들을 때 사울은 결심하고 응답합니다. 증인이 되어,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죄를 씻어 성령충만을 받은 것입니다.

[(18-19a)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그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누가는 여기에서 의학적인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사울의 증상이 신체적인 이상을 수반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그는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새로운 시력을 받았습니다. 사울이 보는 것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흘이나 금식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먹고 마시지 않고, 우선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는 음식을 준비하여 먹였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함께 하며 사울은 강건해집니다.

오늘 말씀을 보며 이 사건이 사울에게만 특수한 경험이며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 사울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그의 마음을 돌이키셨다고 보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 회심 사건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난 독특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넓게 보면 회심한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입니다. 사도행전 26장 14절에서 사울은 회심 사건 중에 이런 음성이 들렸다고 고백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사울이 마음속에 이러한 가시채를 의식했음을 알 수 있는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그가 보이는 극렬한 태도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광신적 태도는 오히려 그 안에 의심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 외적 행위에 더욱 몰두합니다. 그에게 이런 내적 의구심을 불어 넣은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선 스승 가말리엘의 태도였습니다. 사도행전 5장 39절에서 가말리엘은 말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스승의 미적지근한 태도는 그에게 불안감을 주면서 스승과 멀어지게 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요소는 스데반이었습니다. 그는 스데반이 죽는 것을 당연히 여겼지만, 스데반이 죽으면서 보여준 담대한 태도와 말씀에 근거한 설교에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후에 고백하는 말씀에서 보듯이 자신의 내면 깊이 자리 잡은 죄에 대한 의식이 불안감을 증폭하였습니다. 그가 아무리 외적으로 신앙생활에 몰두해도 그의 내면에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상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적 갈등을 겪던 그에게 하나님이 드디어 나타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법은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저 물으십니다.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에게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만 자신이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만 밝히셨습니다. 믿지 않으면 죽일 것이라는 위협이 아니라 다만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셨을 뿐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울은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로 기도하며 고뇌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찌르시다가, 빛과 소리로 자유롭게 반응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온 아나니아가 자신을 부드럽게 만지며 형제라고 부르게 하셨을 때, 그의 마음은 무너져 내립니다. 주님이 얼마나 온화하고 사랑 많으신 분인지, 교회 공동체가 얼마나 따뜻한지 절감한 그는 전심으로 주님께 돌아선 것입니다.

이러한 회심은 오늘날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을 모르는 이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가시채를 뒷발질합니다. 괴로움을 알면서도, 마음의 고뇌를 감추며 하나님을 부정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어떠한 계기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통해 빛과 소리가 그에게 임할 때 회심합니다. 혹시 주위에 이러한 회심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분이 계십니까? 아나니아처럼 그를 돌봐야 할 것입니다. 영혼의 갈급함 뿐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인 필요를 헤아리고 살피며 돌아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위험을 요구한다고 할지라도 그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 사람을 위해 나를 사명의 그릇으로 삼으셨을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사울처럼 회심의 경험이 있다면 아나니아처럼 섬기기 원합니다. 주님의 헤세드를 받았다면 그 헤세드를 전하는 자로 살기 원합니다. 명절 기간 접하게 될 우리 주위의 사울이 있다면 내가 예전에 사울이었음을 기억하고 아나니아로 섬기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내가 사울과 마찬가지로 주님을 박해하다가 예수님을 만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나 역시 주님의 그릇으로 고난을 채우며,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대로 사용되게 하시옵소서. 또 명절 기간에 만나게 될 우리 주위의 사울들이 있는데, 아나니아처럼 저들을 돌보고 세우는 일에 힘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내가 주님을 만나고 회심했던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사울의 회심기와 나의 회심기는 어느 면에서 닮아있습니까?

2.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폭력적으로 강압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이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존중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격했던 결정적인 사건은 무엇입니까?

3.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울을 찾아갔던 아나니아처럼 나를 찾아왔던 믿음의 은사(恩師)를 생각해보고 명절을 맞아 연락을 드려 감사를 표하십시오.

4. 명절에 만나게 될 주위의 사울과 같은 이들에게 어떻게 아나니아처럼 그리스도의 사랑과 돌봄을 베풀겠습니까?

사도행전 9장 말씀 묵상

사도행전 9장 – 묵상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사도행전 9:22).

“Yet Saul grew more and more powerful and baffled the Jews living in Damascus by proving that Jesus is the Messiah.”(Acts 9:22).

사울은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으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남녀를 무론하고 잡아들이려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거짓 선생이라고 믿어 예루살렘을 피해 도망한 그리스도인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갔습니다(1-2).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울에게 성으로 들어갈 것을 명하시고 행할 것을 알릴 사람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일어났으나 아무것도 볼 수 없어서 길을 가던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울은 유다라는 사람의 집에서 기도하면서 사흘 동안을 금식했습니다.

예수님은 사울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라는 것입니다(15). 즉 베드로가 이스라엘 백성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사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주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사울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나니아를 통해 사울의 눈을 낫게 했습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함으로써 사울의 눈은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17). 그 후 사울은 자신이 박해하던 사람들과 동역자가 되었으며, 아나니아는 바울의 회심에 대한 훌륭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다메섹에서 사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유대인들을 굴복시켰습니다(22). 유대인들로서는 그리스도인 박해자로 소문난 사울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증명하는 그의 변화된 모습이 유대인들을 굴복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갑자기 돌변한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한 후 사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을 지켰습니다(24-24).

예루살렘의 신자들은 바나바를 통하여 사울의 회심을 확신했고, 사울을 자기들와 함께 머물도록 허락했습니다. 거기에서도 사울은 예수의 이름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루살렘의 형제들은 그를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서 그의 고향 다소로 보냈습니다(26-27).

베드로는 유다 근방의 순회 선교에 참여하여 룻다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8년이나 침상에 누워 있던 중풍병자 애니아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기적적인 치유를 했습니다. 또한 욥바에서 도르가라 불리는 여제자 다비다를 죽음에서 살려냈습니다.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 시체에게 일어나라고 명했습니다. 다비다는 특별히 선행과 구제의 생활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신실한 제자였습니다(28-40). 그는 또한 다음 사역의 준비를 위해서 피장 시몬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주께서 주신 오늘! 어떤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주님께 겸손히 간구하여 응답받는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쉬운성경 사도행전 09장

9:1 <사울의 회개>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그들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9:2 다마스커스의 여러 회당에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붙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9: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커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밝은 빛이 사울을 둘러 비췄습니다.

9:4 사울은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 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소리가 뚜렷이 들렸습니다.

9:5 사울은 “주님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9:6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9:7 사울과 함께 길을 가던 사람들은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깜짝 놀라 말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9: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울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커스로 데려갔습니다.

9:9 사울은 삼 일 동안, 앞을 보지 못했으며,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9:10 다마스커스에 아나니아라는 어떤 제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환상 중에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9:11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고 하는 거리로 가거라. 그리고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는 다소 사람을 찾아라. 그가 지금 거기서 기도하고 있다.

9:12 그가 환상 속에서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찾아와 그에게 손을 얹어서 그의 시력이 회복되는 것을 보았다.”

9:13 아나니아가 대답했습니다. “주님, 제가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 사람에 관한 소문을 들었는데, 그가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성도들에게 많은 해를 입혔다고 합니다.

9:14 그리고 그 사람은 대제사장들에게서 주님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잡아갈 수 있는 권한을 받아 가지고 이 곳에 왔다고 합니다.”

9:15 그러나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거라. 그는 이방 사람들과 여러 왕들과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나의 이름을 전하도록 선택된 나의 도구이다.

9:16 그가 내 이름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해야 할지를 내가 그에게 보여 주겠다.”

9:17 아나니아는 그 곳을 떠나 사울이 있는 집으로 가서 사울에게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사울 형제여, 그대가 이리로 오는 길에 나타나셨던 주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그대의 시력을 다시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9: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사울은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일어나 세례를 받았습니다.

9:19 그는 음식을 먹고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다마스커스에서 설교하는 사울>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커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9:20 그는 곧바로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9:21 사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놀라서 물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믿던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가 이 곳에 온 것도 제자들을 붙잡아서 대제사장들에게 넘겨 주려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9:22 그러나 사울은 더욱 힘을 얻어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증명하므로, 다마스커스에 사는 유대인들은 당황스러워했습니다.

9:23 <도망가는 사울> 여러 날이 지난 뒤,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기로 모의하였습니다.

9:24 그러나 사울은 그들의 계획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9:25 어느 날 밤, 사울의 제자들이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벽에 난 구멍을 통해 그를 성 밖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9:26 <예루살렘으로 간 사울>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곳의 제자들과 어울리려 했으나, 그들은 사울이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모두 사울을 두려워했습니다.

9:27 하지만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로 갔습니다. 바나바는 사도들에게 사울이 길에서 주님을 본 것과, 주님께서 사울에게 하신 말씀과, 사울이 다마스커스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이름을 전한 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9:28 이렇게 해서 사울은 제자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주 예수님의 이름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9:29 사울은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인들과 이야기도 하고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들은 사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9:30 형제들이 이 사실을 알고,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려갔다가 다시 다소로 보냈습니다.

9:31 그러는 동안,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있는 교회들이 평화를 되찾았으며, 터전을 든든하게 잡았습니다. 교회는 주님을 두려워하며 성령의 위로를 받아 믿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9:32 <중풍병 환자를 고친 베드로> 베드로가 여러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9:33 거기서 베드로는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애니아는 중풍에 걸려 팔 년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지내던 사람이었습니다.

9:34 베드로가 그에게 “애니아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고쳐 주실 거요.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애니아가 곧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9: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9:36 <욥바로 간 베드로>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그리스어로 하면 도르가인데, 그 뜻은 ‘사슴’입니다. 다비다는 언제나 착한 일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힘썼습니다.

9:37 베드로가 룻다에 머물고 있는 동안, 다비다가 병이 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다비다의 시신을 씻어 다락방에 두었습니다.

9:38 룻다는 욥바에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욥바에 사는 제자들이 베드로가 룻다에 있다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을 베드로에게 보내어 속히 와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9: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욥바로 갔습니다. 베드로가 그 곳에 이르자 사람들이 그를 다락방으로 안내했습니다. 과부들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살아 있을 때, 만든 여러 옷가지들을 베드로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9:40 베드로는 사람들을 모두 내보낸 뒤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시신을 향해 몸을 돌려 “다비다여, 일어나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비다가 눈을 떠서 베드로를 보더니 일어나 앉았습니다.

9: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다비다를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서 다비다가 살아난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9:42 이 소식이 욥바 전체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9:43 베드로는 욥바에 있는 여러 날 동안, 가죽 제품을 만드는 시몬의 집에서 묵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온전한 노예

사도행전 9장 1-9절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오늘의 본문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며 위대한 사도라고 불린 사도 바울의 이야기이다. 특별히 그의 삶의 전환기인 예수님과의 만남을 다룬다.

8:3에서 이미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 말하고 있다. 스데반이 죽은 이후, 그의 머릿속에는 유대교가 아닌 자들은 결국 죽게 될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신앙 있는 자들을 박해하고, 이제 때가 됨에 따라 더 넓은 곳으로 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가 갈 곳은 다메섹으로 바울은 이미 대제사장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갑자기 예수님께서 등장하신다. 예수님의 등장에 바울을 포함한 무리들은 크게 놀랐다. 바울과 함께 있던 자들은 소리만 듣지 결코 보지도, 말을 하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러나 바울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빛이 사라진 이후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리어 다메섹으로 갔고 9절과 같이 죽은 사람과 같은 모양으로 있었다.

위 내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이후 사람들의 모습이다. 7절에서 말하길 바울 이외 다른 사람들은 ①소리만 듣고, ②보지 못하고, 말을 못한 채 서 있었다고 한다. 이는 무슨 상태인가? 그들은 분명 사도 바울과 같이 보지 못했을 뿐 똑같이 빛으로 나타난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하시는 말씀을 다 들었다. 하지만 듣기는 들어도 그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마 13:14에서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는 바와 같이 동일하다. 즉 영적으로 죽어 있던 것이었다. 이는 앞서 등장했던 시몬과 같은 모양이다. 자신의 앞에서 각종 표적과 기적이 일어남에도 그는 그 표적과 기적의 참된 뜻을 보지 못한 채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해 돈을 주고 사려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 자리에서 취한 행동은 무엇이었나? “서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앞에 그리스도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한 채, 그들의 구세주가 나타났음에도 그에게 살려달라고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다. 죄의 왕국에 그대로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파멸 뿐이다. 영원한 죽음, 지옥 뿐이다.

사울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그도 역시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봤다. 그리고 난 후 그의 모습은 8-9절에 자세히 그리고 있다.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앞서 언급된 옆에 있던 자들과 동일한 상태였다. 즉 영적으로 죽어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모습은 사람들과 조금 달라졌다. 바로 눈이 먼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가? 갑자기 빛을 봤기 때문인가? 이렇게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는 줄로 안다. 그러나 나는 주님께서 그에게 죽어 있는 자신의 영적 상태를 보게 하시는 데 이유가 있다는 걸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사울이 지금 자신이 영적으로 죽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더 깊은 죄의 자리에 나아가려하자, 주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너의 현 상태가 어떠한 지 직접 느껴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에 눈이 멀게 된 사울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엄청난 내적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9절은 그의 심정을 대변해준다. 사흘 동안 보지 못함 가운데 그는 의지적으로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이어지는 11절 말씀은 사울이 현재 “기도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러니까 사울은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서 혼란스러워하며 갈등하면서 자신이 찾는 그 구원자에게 묻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넓은 구원의 과정가운데 그의 위치는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 바로 앞에 있었다. 즉, 그리스도인이 되기 직전에 있던 것이다.

아마 사울은 그때 알았을 것이다. 눈이 먼 자는 결코 자신이 원하는 그 목적지를 갈 수 없다. 즉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는 결단코 자기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것이다. “과연 나에게 이러한 과정이 있었는가?” 내가 말하는 것은 반드시 사도 바울과 동일한 모양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구원해줄 구원자를 찾은 것이 있었냐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교회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 교회를 몇 년 다녔는가, 얼마를 헌금 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상태가 어떠한 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과정가운데 시작된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고민을 우리는 해 본적이 있는가?

만약 지금까지 이러한 고민을 해보지 않았고 신앙생활을 해왔다면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기를 소망한다. 교회에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고민보다,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보다 우선적인 것은 ‘과연 지금 내 영적 상태는 어떠한 가’ 스스로 돌아보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보면 우리는 어느 새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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