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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의 9 가지 은사 | 성령의 9 가지 은사 총정리 최근 답변 238개

성령의 9 가지 은사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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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2:8-10에서 나타나는 은사들은 지혜, 지식, 믿음, 병고침, 능력 행함, 예언함, 영들을 분별함, 방언들, 방언들을 통역하는 은사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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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주시는 9가지은사

성령이 주시는 9가지 은사. 고린도전서 12:4-11. 2 은혜의 선물은 여러가지지만, 그것을 주시는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섬기는 일은 여러가지지만, 같은 주님을 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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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heology.ac.kr

Date Published: 4/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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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9가지 은사(고린도전서 12:8-11) – 타이슨77

바울은 성령의 은사의 종류를 말함에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 분별, 각종 방언, 방언 통역 등으로 나열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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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yson77.tistory.com

Date Published: 8/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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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9가지 은사 – LAMP

성령의 9가지 은사 · 교회 사람들이 가장 잘 오해하는 은사 중에 하나가 성령께서 주시는 예언의 은사입니다. ·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 “사랑을 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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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evkimgl.tistory.com

Date Published: 4/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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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9가지 은사들 – 다음블로그

성령의 9가지 은사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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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7/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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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아홉가지 은사 – Fruitfulife

성령의 아홉가지 은사 :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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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fruitfulife.net

Date Published: 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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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9가지 은사 – 두란노몰

1) 지혜의 말씀의 은사 -40 · 2) 지식의 말씀의 은사 -55 · 3) 믿음의 은사 -67 · 4) 병을 고치는 은사 -84 · 5) 능력 행함(기적 행함)의 은사 -99 · 6) 예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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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all.duranno.com

Date Published: 7/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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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은사(The Gifts of the Spirit)

성령의 9가지 은사는 현대에 와서 사람들에 의해 세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1) 말하는 은사, 즉 각종 방언을 말함, 방언의 통역, 예언; (2) 계시의 은사: 지혜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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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avidservant.com

Date Published: 12/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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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9 가지 은사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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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성경사랑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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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6. 1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C2R6b4i_NAs

성령의 9가지 은사 : 그 중 최상의 은사는? 방언? 예언?

현대의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은 특별히 성령의 은사 부분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을 권위에 올려 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사도적 권위가 있음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권위를 얻기 위해 사도들이 활동하던 사도행전으로 항상 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사도의 표적들을 자신이 소유했음을 입증하려 애씁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고린도전서 12장을 가지고 이스라엘에게 해당되었던 사도의 표적들이 오늘날까지도 분명히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 표적들을 모방하게 되고 “사도의 권위”를 주장하게 되며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바꿔치기 합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전형적 수법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수 백만 달러씩 들여 전개하는 전국적인 규모의 운동(성령운동, 회개운동, 통일운동, 개혁운동등)들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뒤집어 엎기 위해 고안된 위장전술일 뿐입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은사들의 종류를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8-10에서 나타나는 은사들은 지혜, 지식, 믿음, 병고침, 능력 행함, 예언함, 영들을 분별함, 방언들, 방언들을 통역하는 은사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방언들”은 하나님께서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에게 주셨던 가장 작은 은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적이였던 고린도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은사들에만 열중하고 성령의 열매는 무시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은사들을 그들에게 주셨고, 그들에게 은사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주신 은사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은 방언이었습니다. 방언은 항상 은사들을 열거하는 데 있어서 마지막에 나옵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중요성에 있어서도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28에는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몇을 세우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되는 순서는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셋째 다음에는 가장 작은 은사들의 순서가 따릅니다.

“그 다음은 능력 행함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들이며,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여러 가지 방언들이라.”

방언은 맨 밑에 위치하는 은사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은 방언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모하면 주시는게 방언이에요” “사모해야 주시죠” “기도를 많이 하면 방언이 더 유창해져요” 따위의 말들은 성경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집사, 권사, 장로의 직분을 가진 자는 성경조차 읽어보지 않으면서 뭔가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자들에게 성경 어디에 그런 말이 쓰여있는지 꼭 한번 물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들은 얼굴을 붉히면서 믿음이 없는 여러분을 탓하거나, 성령의 역사를 무시한다면서 용서받지 못할 성경훼방죄/모독죄로 겁을 줄 것입니다. 그러한 답변이 바로 그들이 얼마나 성경에 무지한지에 대한 증거입니다. 성령모독죄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다른 글에 써 놓았으니 확인 해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오히려 너희는 최상의 은사들을 열망하라”(고전 12:31)고 말합니다. 즉, 방언에 대해서는 단 5분도 낭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소위 은사주의자들과 성경 변개자들은 이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광을 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줄 수 있는 가장 작은 것을 얻고자 항상 노력하려 하며 그것을 얻으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것처럼 위장합니다. 이것은 옛 성품이 드러나는 것이며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육신적인 고린도 교회의 그리스도인의 모습과 같습니다.

성경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물어 보고 싶습니다. 이 구절을 가지고 당신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이 구절은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충만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와 다를 바 없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 명령은 바로 “오히려 너희는 최상의 은사들을 열망하라.”입니다. 방언은 30절, 28절, 10절에서 제일 마지막에 나옵니다. 명백하게 “최상의” 것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최상의 것이 아닌 방언을 그토록 열망하셨다면 한가지 더 물어보겠습니다. 당신은 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시나요?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령의 9가지 은사(고린도전서 12:8-11)

성령의 9가지 은사(고린도전서 12:8-11)

사도 바울은 8절부터 성령이 주시는 다양한 은사의 종류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성령의 은사를 아홉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틀에 메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믿는 성도와 교회의 유익을 위해 혹은 이렇게도 주시고 혹은 저런 양상으로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사에는 어떤 우열의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 성도들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필요한 것들입니다. 다만 우리는 이 모든 은사를 다 받을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각자이 필요에 따라 성령이 나눠주시기 때문에 성령이 주실때 비로소 나는 그 은사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뜻에 따라 각자에게 필요한 은사를 필요한 대로 주시기 때문에 전적으로 성령께 의존하며 의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1. 성령의 아홉가지 은사

바울은 성령의 은사의 종류를 말함에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 분별, 각종 방언, 방언 통역 등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1) 지혜의 말씀 : 여기서 지혜는 소피아로 지식과 구별짓고 있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내재해 있는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은사로 볼 수 있습니다. 잠언은 성령의 지혜로 주신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은사를 받으면 그리스도를 아는 깊은 지혜를 가질 수 있으며 은혜로 주신 것들을 지혜로 깨닫게 되어 신앙 생활에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하는 말씀을 전하므로 신앙적인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2) 지식의 말씀 : 지식이란 그노시스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이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필수적인 지식이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정도 이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 지식의 말씀은 특별히 신학자들이나 말씀을 증거 하는 목회자들에게 주시는 은사가 되겠습니다. 이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을 은혜롭게 전달할 수 있는 교사직에서 봉사할 수 있을것입니다.

(3) 믿음 :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은사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으며 구원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성령의 은사로 언급되고 있는 믿음은 이 같은 일반적인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로서의 특별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이 은사를 받으면 말씀에 대한 믿음이 남달리 강하기 때문에 그의 신앙 생활이 대단히 능력이 있으며 구하는 기도에도능력이 따르는 것입니다.

(4) 병 고치는 은사 : 다음에 병고치는 은사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물론 병 고치는 능력도 따릅니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능력인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로서의 신유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에 게는 이런 은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이런 은사는 즉각적이며 온전한 것으로 나타났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경우는 드물고 점진적으로 나타나며 하나님의 권능의 나타나심을 보여주시면서 치료해 주십니다.

(5) 능력 행함의 은사 : 10절에서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은사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권능이나 능력이 나타나는 은사입니다. 남다른 능력을 받아 기적적인 역사도 일으키며 하나님의 권능 행하심을 보여 주는 은사입니다. 그러나 이런 은사가 지금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잘 알 수 없는 것입니다.

(6) 예언의 은사 : 다음에 예언의 은사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은사는 프로페테이아로 하나님의 계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은사입니다. 그 당시 이 예언의 은사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가르치시기 위해 주신 큰 은사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은사가 성경이 없었을 당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역할로서의 은사인지 다른 사람의 장래에 관한 어떤 계시를 전달하는 은사인지 분명한 구분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이 은사에 많은 혼돈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예언의 은사는 개인적인 신상의 길흉을 예고해 주는 그런 의미에서의 은사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7) 영들 분별함의 은사 : 다음에 언급된 은사가 영들 분별의 은사입니다.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분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특히 초대 교회 시대에는 성경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은사가 필요로 했습니다. 지금은 이 은사가 말씀을 통해서 말씀의 기준에 의해 분별할 수 있습니다.

(8) 각종 방언 말함 : 다음에 방언의 말함의 은사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각종 방언이란 방언이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방언은 성령의 말씀하시게 됨을 따라 내 영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9) 방언들 통역함의 은사 : 방언은 통역되어야 그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방언은 영의 언어이기 때문에 육신의 귀로는 깨달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통역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해석해 주어야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 개인이나 교회나 성령의 은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서로간 유익함이 되도록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9가지 은사

성령의 9가지 은사들 The 9 gifts of the Holy Spirit

영성학교School of Spirituality에서 반드시 공부해야할 필수과목이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입니다.

먼저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이 잘 균형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직분, 은사, 사역의 상호관계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전12:4-6)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어떤 사람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서 하시고 하시는 일을 행하게 하십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에게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은사). 그리고 부르심에 순종하여 받은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을 하게 하십니다(=사역). 그와 같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고 권위를 부여하십니다.(=직분) 사람을 불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게 하실 때에는 이와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동역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란?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고전12:7)

그러면 성령의 은사라고 할 때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은사란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의미합니다. 재능도, 건강도, 재물도, 직분도 다 은사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라고 말할 때는 좁은 의미에서 ‘성령의 나타남’을 뜻합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할 때 사실은 ‘성령의 나타나심’을 경험했다는 그런 뜻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는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12:11)

엄밀히 말해 성령께서 어떤 사람에게 은사를 내려주신다고 할 때 그 은사를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사용하듯이 임의대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성령께서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 혹은 받는다고 말을 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우리가 받는 물건이나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성령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어주시는 활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할 수는 있어도 받으라고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나타남을 주시는 이유는?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자신을 보이는 방식으로 드러내시는 것을 우리는 ‘성령의 은사’라고 부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사람이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려고 하실 때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익’common good을 위해서입니다. 첫째는 개인의 유익personal good입니다. 둘째는 공동의 유익public good, 즉 교회의 유익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유익’이란 말은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흔들리지 않도록 세운다’ ‘견고하게 한다’ ‘강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은 증거의 영이십니다. 성령께서 친히 증거가 되어주심으써 우리가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우리가 신실하게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우리와 함께 증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의 은사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들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고전12:8-10)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9가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9가지 성령의 은사들은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는 것 혹은 깨닫는 것과 관련된 은사들입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그리고 영들 분별함이 그것입니다. 둘째는 말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은사들이 있습니다. 방언 말함, 방언들 통역함, 그리고 예언입니다. 셋째는 행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은사들입니다. 믿음, 병 고치는 은사, 그리고 능력 행함입니다. 편의상 이렇게 나누었지만 어떤 은사들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도 하고 종종 두 가지 이상 함께 역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지혜의 말씀과 예언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식의 말씀과 병을 고치는 은사 역시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는 것(1)-지혜의 말씀

이것은 특정 상황 속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지를 초자연적으로 깨닫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하라고 보내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10:19,20) ‘특별한 상황’이란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할 상황,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해야 하는 상황, 내가 증인이 되어야 할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을 만났을 때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성령께서 초자연적으로 알게 하여 주셔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십니다. 이 은사는 구변(speaking)과 관련이 있으나 ‘깨달음’의 측면이 강조된 것입니다.

아는 것(2)-지식의 말씀

이것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의 본질을 초자연적으로 깨닫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은 종종 병자들을 대하시거나 혹은 사람들을 대하실 때 그들이 가진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기도 하셨고 또는 사람들의 생각을 희한하게 읽기도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웃고 있을 때 사실 그 마음에는 깊은 슬픔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이 어떤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을 때 그도 모르는 병의 원인을 갑자기 깨닫게 되기도 하며 때로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이 무엇인지 느껴지면서 알 수도 있습니다. 이와같이 어떤 것의 본질, 즉 숨겨진 원인이나 은밀하게 감추어진 부분을 초자연적으로 알게 되는 능력이 곧 지식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은사는 병들 고치는 은사와 영들 분별함의 은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은사입니다.

아는 것(3)-영들 분별함

지식의 말씀이 병의 원인과 같이 보통 사람의 관찰에는 알 수 없는 것을 초자연적으로 아는 능력이라면 영들 분별함은 특히 근본적인 동기나 의도를 파악한다든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인지 아니면 어둠에 속한 영인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단번에 파악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서로 비슷한 점이 있으나 영에 관련된 초자연적인 지식을 의미합니다. 기본적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사람의 영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아니면 어둠에게 속하였는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요일2:27참조) 어떤 사람이 적그리스도인지 아닌지, 어떤 교리가 성경적인지 아니면 이단적인지 기본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 특별한 가르침과 훈련을 받지 않고서도 가능합니다. 지식적이고 교리적인 부분에 관해서 분별하기 위해 신학적인 훈련을 받을 필요는 있습니다. 이 분별은 마치 ‘보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시력이 나쁜 편인데(0.2 정도) 안경을 쓰지 않으면 사물과 사람이 뿌옇게 보입니다. 그런데 안경을 쓰면 환하게 잘 보입니다. 분별도 그와 같습니다. 성령께서 나의 눈을 비추어주시면 보통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것들이 희한하게도 잘 보입니다. 특히 영들을 분별하는 문제에 있어서, 즉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어둠에 속하였는지, 어떤 심령의 깊은 동기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들이 서로 대결을 벌이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을 어떻게 분별할까요? 직접 열왕기상 제일 마지막 장을 살펴보면서 그 차이점이 무엇인지 직접 찾아보십시오.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행하는 것(1)-믿음

행동과 관련된 성령의 은사들 중에 ‘믿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구원에 이르는’ 그런 일반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 경험하는 성령의 은사로서 ‘초자연적인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며 구속의 완성을 위하여 일을 행하실 때에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위해 순종하려는 어떤 사람을 부르시고 참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고 순종하려고 하고 헌신하려고 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믿음을 나누어주십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초자연적인 확신을 갖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질 것을 하나님의 확신수준으로 믿는 것이고 하나님이 친히 행하시는 그 일을 이루어가게 하십니다. 이 ‘믿음의 은사’ ‘초자연적인 확신의 은사’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는 것’을 경험하려면 우선 사람의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람의 일과 다른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그 일에 전폭적으로 뛰어들어야 하고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에 헌신해야 성령의 도우심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올린 [믿음학교]에 관한 시리즈 글을 참조해보시기 바랍니다.

행하는 것(2)-병들 고침

성령의 은사들 중에 유일하게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 은사입니다. 그러니까 병들을 고치는 은사를 주신다고 해서 모든 병을 다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이같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주시는 사람은 대부분 긍휼의 성품이 많은 사람입니다. 병자와 약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기꺼이 함께 나눠 지려고 할 때 성령께서 이와 같은 은사들을 주셔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시고 믿음의 공동체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견고하게 되도록 역사하십니다.

행하는 것(3)-능력 행함

이것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물위를 걸으시거나 혹은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과 같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행하게 하시는 은사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코흘리게 시절부터 이러한 현상을 수없이 보고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쌀 한 되로 몇 달을 지낸다든지, 한 겨울에 얼어붙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는 장면이나, 가뭄에 말라붙은 시내물에서 물이 흘러나온다든지..제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믿음의 선배들은 고상한 신학적인 지식이 없었고 변변한 학위조차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 성경을 사랑하고 그 누구보다 단순하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전한 믿음으로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의 믿음에 비하면 저는 벌레수준이지만 그럼에도 그분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행하신 능력을 보고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려는 자들에게 성령 하나님은 능력을 행하게 하심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말하는 것(1)-방언 말함

말하는 것과 관련된 은사로서 대표적인 은사가 방언을 말하는 능력입니다. 방언은 민족들과 종족들의 언어로 말하는 지상방언이 있고, 천사들의 언어를 말하는 천상방언이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특히 개인에게 유익합니다. 기도할 때나 찬양할 때 방어을 말함으로써 성령의 임재를 강하게 느끼게 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릴 적 저의 신앙의 멘토이셨던 외할머니께서 기도하실 때 항상 일본어로 기도하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자랐습니다. 일본에는 산 적도, 여행한 적도 전혀 없으신 분이고 심지어 초등학교조차 나오지 못한 분이셨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이시지만 방언으로 기도하는 일이 거의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는 어릴 적 어머니께서 잠꼬대를 방언으로 하시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선교단체에서 사역할 때에는 방언을 곧 잘 하곤 했는데요..선교지에 와서는 개인기도생활에 문제가 있는지 어찌된 일인지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흑인 목사들 앞에서 영어로 기도를 할 줄은 압니다만 그것은 방언기도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말하는 것(2)-방언들 통역함

방언들 통역함이란 방언을 들을 때 그것이 모국어를 듣는 것처럼 들리는 초자연적인 현상입니다. 주의할 것은 이것은 해석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통역을 한다고 하면서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통역은 할 줄은 몰라고 통역이 올바른 통역인지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는 것인지 정도는 분별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요? 천만에요! 아주 간단한 원리입니다. 고전 14장을 잘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방언의 참된 특징과 예언의 참된 특징에 대해 각각 잘 비교하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방언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통역이 사람에게 설교하듯이 나오는 것은 올바른 통역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 가지 분별의 원리들을 우리는 다른 데서가 아닌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말하는 것(3)-예언함

교회 사람들이 가장 잘 오해하는 은사 중에 하나가 성령께서 주시는 예언의 은사입니다. 특히 아프리카 흑인들이 그렇습니다. 원수의 속임수가 가장 잘 통하고 모조품이 가장 많이 활개를 치는 부분입니다. 위조지폐를 만드는 지능범은 5만원권이나 10만권을 위조하는 것이 아니라 5천원권을 위조한다고 합니다. 왜냐면 사람들이 별 생각없이 받기 때문에 분별해보아야겠다고 잘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언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언의 은사에 관해 할 말이 참 많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고린도전서 14장을 잘 읽고 묵상해보고 구약의 선지서들을 잘 읽고 연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점만 말하자면 예언이란 ‘권면과 위로의 은사’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예언의 은사에 중요한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돕는 것’이고 둘째, 진리를 깨닫고 믿음이 강해지도록 돕는 것이고, 셋째,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소망을 가지고 환난 가운데 인내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전한 메시지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다른 모든 은사들과 마찬가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올바로 예언의 은사가 사용될 때 믿음의 공동체는 더욱 견고해지고 성장해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사랑을 따라 구하라…”(고전14:1)

칼은 좋은 것이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줄 수도 있고 아니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임으로 행복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 역시 받는 것보다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받긴 했는데 잘 사용하지 못함으로 은사가 소멸되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일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단회적 경험으로 끝나버리느냐, 아니면 지속적으로 성령의 나타내심을 경험하면서 지속적으로 유익을 누리느냐? 이것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첫째, 사랑을 추구해야 합니다.

은사를 사모하되 은사만 사모하면 안 됩니다. 사랑을 따라 사용되지 않는 은사는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자신과 예배공동체 모두에게 상처와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둘째, 성경의 권위 아래 복종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함으로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보다 더 높은 은사는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교회의 유익을 추구해야 합니다.

방언의 은사는 개인의 덕을 세우는데 유익하지만 그 외 모든 은사들은 다 개인보다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은사들입니다. 방언의 은사라 할지라도 개인의 유익을 교회의 유익을 해치는 방식으로 남용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넷째, 영적질서를 잘 지켜야 합니다.

특히 예언의 은사가 그렇고 병고치는 은사들도 그렇습니다. 내게 능력이 있다고 무조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은사를 무질서하게, 남용하기 시작하면 성령의 은사는 더 이상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교회에도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있고, 은사를 집행하고 실행하는 데에도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가 있습니다. 이러한 질서를 잘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 은사를 경험하고 실행하는 것보다 먼저입니다.

다섯째,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가 위험할지라도 그것을 사모하며 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추구한다고 은사를 사모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성경의 가르침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릇이요 은사는 그릇에 담는 내용입니다. 은사 없는 사랑은 무기력하고, 사랑 없는 은사는 위험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 주시기 전에 가르쳐주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사모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할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내 삶 가운데 성령의 임재가 뚜렷하게 나타나서 내 삶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힘있게 증거하는 삶을 살기를 열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를 내려 주시든 안 내려주시든 언제나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당연한 것입니다.

여섯째, 지체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어떤 은사를 경험할 때 내가 경험한, 혹은 내가 받은 그 은사가 최고인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내가 갖지 못한 다른 은사들을 우리는 또한 사모해야 하며, 내가 갖지 못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잘 섬기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축복해야 하며, 나와 다른 은사를 가진 이들과 협력하여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길 줄 알아야 하고, 나와 다른 은사를 진심으로 존중히 여기며 그들과 연합하여 사역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일곱째,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은사를 가진 사람은 교만해지기 쉽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의 놀라운 은사가 나타나고 경험이 되어지면 순간적으로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된 것같은 착각이 듭니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가 아니면 우리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인생이요 벌레보다 못한 비참한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사를 허락하시는 것은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은사를 가진 사람은 은사를 갖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을 무시하여서는 안 되며 그들을 섬기라고 이러한 은사를 내려주셨음을 깨닫고 그들의 아래로 내려가서 그들을 우러러보며 그들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며 섬기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서로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은 지체임을 확인하면서 은사를 사용할 때 은사를 남용함으로 자신과 공동체에 상처를 입히는 어리석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오래 동안 은사를 누릴 수 있고 은사를 가지고 섬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성령의 은사들이 우리 삶속에 풍성히 나타남으로

세상 속에서 사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담대히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게 하소서!!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P.S. 성령의 9가지 은사들을 한 눈에 보기 쉽도록 만든 도표입니다..^^

성령의 9가지 은사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전12:4-6)

● 직분, 은사, 사역의 상호관계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어떤 사람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서 하시고 하시는 일을 행하게 하신다.

먼저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에게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은사을 주신다.

그리고 부르심에 순종하여 받은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 사역을 하게 하신다.

그와 같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직분을 허락 하시고 권위를 부여하신다.

사람을 불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게 하실 때에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동역하시는 것이다.

1. 성령의 은사란?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고전12:7)

성령의 은사란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이주시는 선물을 의미한다.

재능도, 건강도, 재물도, 직분도 다 은사이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라고 말할 때는 좁은 의미에서 ‘성령의 나타남’을 뜻한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할 때 사실은 ‘성령의 나타나심’을 경험했다는 뜻이다.

2. ‘성령의 은사를 받는다’는 무슨 뜻인가?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12:11)

엄밀히 말해 성령께서 어떤 사람에게 은사를 내려주신다고 할 때

그 은사를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사용하듯이 임의대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성령께서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어주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 혹은 받는다고 말을 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우리가 받는 물건이나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성령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어 주시는 활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할 수는 있어도

받으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

3. 성령의 나타남을 주시는 이유는?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자신을 보이는 방식으로 드러내시는 것을 우리는 ‘성령의 은사’라고 부른다.

성령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사람이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려고 하실 때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유익’common good을 위해서이다.

첫째는 개인의 유익personal good이다.

둘째는 공동의 유익public good, 즉 교회의 유익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유익’이란 말은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흔들리지 않도록 세운다’,

‘견고하게 한다’, ‘강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성령은 증거의 영이시다.

성령께서 친히 증거가 되어주심으써 우리가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니까 성령은 우리가 신실하게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우리와 함께 증거하시는 분이시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전12:4-6)

4. 성령의 은사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들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고전12:8-10)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9가지 소개하고 있다.

9가지 성령의 은사들은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아는 것 혹은 깨닫는 것과 관련된 은사들이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그리고 영들 분별함이 그것이다.

둘째는 말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은사들이 있다.

방언 말함, 방언들 통역함, 그리고 예언의 은사다.

셋째는 행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은사들이다.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이다.

편의상 이렇게 나누었지만 어떤 은사들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도 하고

종종 두 가지 이상 함께 역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지혜의 말씀과 예언이 그렇다.

그리고 지식의 말씀과 병을 고치는 은사 역시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첫째, 아는 것, 깨닫는 것과 관련된 은사

(1)-지혜의 말씀

이것은 특정 상황 속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지를 초자연적으로 깨닫는 능력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하라고 보내실 때 마10:19,20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특별한 상황’이란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할 상황,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해야 하는 상황,

내가 증인이 되어야 할 상황을 말한다.

그런 상황을 만났을 때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성령께서 초자연적으로 알게 하여 주셔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신다.

이 은사는 구변(speaking)과 관련이 있으나 ‘깨달음’의 측면이 강조된 것이다.

(2)-지식의 말씀

이것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의 본질을 초자연적으로 깨닫는 능력이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은 종종 병자들을 대하시거나 혹은 사람들을 대하실 때

그들이 가진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기도 하셨고 또는 사람들의 생각을 희한하게 읽기도 하셨다.

어떤 사람이 웃고 있을 때 사실 그 마음에는 깊은 슬픔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이 어떤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을 때 그도 모르는 병의 원인을 갑자기 깨닫게 되기도 하며

때로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이 무엇인지 느껴지면서 알 수도 있다.

이와같이 어떤 것의 본질, 즉 숨겨진 원인이나 은밀하게 감추어진 부분을

초자연적으로 알게 되는 능력이 곧 지식의 말씀이다.

이러한 은사는 병들 고치는 은사와 영들 분별함의 은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은사이다.

(3)-영들 분별함

지식의 말씀이 병의 원인과 같이 보통 사람의 관찰에는 알 수 없는 것을 초자연적으로 아는 능력이라면

영들 분별함은 특히 근본적인 동기나 의도를 파악한다든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인지

아니면 어둠에 속한 영인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단번에 파악하는 능력을 말한다.

서로 비슷한 점이 있으나 영에 관련된 초자연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사람의 영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아니면 어둠에게 속하였는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요일2:27참조)

어떤 사람이 적그리스도인지 아닌지, 어떤 교리가 성경적인지 아니면 이단적인지

기본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 특별한 가르침과 훈련을 받지 않고서도 가능하다.

지식적이고 교리적인 부분에 관해서 분별하기 위해 신학적인 훈련을 받을 필요는 있다.

이 분별은 마치 ‘보는 것’과 같다.

저는 시력이 나쁜 편인데(0.4정도) 안경을 쓰지 않으면 사물과 사람이 뿌옇게 보이지요.

그런데 안경을 쓰면 환하게 잘 보이죠.

분별도 그와 같다.

성령께서 나의 눈을 비추어주시면 보통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것들이 희한하게도 잘 보리게 된다.

특히 영들을 분별하는 문제에 있어서, 즉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어둠에 속하였는지,

어떤 심령의 깊은 동기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들이 서로 대결을 벌이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을 어떻게 분별할까요?

직접 열왕기상 제일 마지막 장을 살펴보면서 그 차이점이 무엇인지 직접 찾아보면 도움이 된다.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의 거짓 예언(왕상22:11)과 이믈라의 아들 마가야의 참예언의 사례이다.

둘째는 행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은사(1)-믿음

행동과 관련된 성령의 은사들 중에 ‘믿음’이 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구원에 이르는’그런 일반적인 믿음이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 경험하는 성령의 은사로서

‘초자연적인 확신’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며 구속의 완성을 위하여 일을 행하실 때에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위해 순종하려는 어떤 사람을 부르시고 참여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고순종하려고 하고 헌신하려고 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믿음을 나누어주신다.

하나님이 가지신 초자연적인 확신을 갖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질 것을

하나님의 확신수준으로 믿는 것이고 하나님이 친히 행하시는 그 일을 이루어가게 하신다.

이 ‘믿음의 은사’ ‘초자연적인 확신의 은사’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는 것’을 경험하려면

우선 사람의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람의 일과 다른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그 일에 전폭적으로 뛰어들어야 하고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에 헌신해야 성령의 도우심으로 경험할 수 있다.

행하는 것(2)-병고침

성령의 은사들 중에 유일하게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 은사이다.

그러니까 병들을 고치는 은사를 주신다고 해서 모든 병을 다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이같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주시는 사람은 대부분 긍휼의 성품이 많은 사람이다.

병자와 약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기꺼이 함께 나눠 지려고 할 때

성령께서 이와 같은 은사들을 주셔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시고 믿음의 공동체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견고하게 되도록 역사하신다.

행하는 것(3)-능력 행함

이것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물위를 걸으시거나 혹은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과 같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행하게 하시는 은사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려는 자들에게 성령 하나님은 능력을 행하게 하심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신다.

둘째는 말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은사

(1)-방언 말함

말하는 것과 관련된 은사로서 대표적인 은사가 방언을 말하는 능력이다.

방언은 민족들과 종족들의 언어로 말하는 지상방언이 있고,

천사들의 언어를 말하는 천상방언이 있다.

방언의 은사는 특히 개인에게 유익하다.

기도할 때나 찬양할 때 방어을 말함으로써 성령의 임재를 강하게 느끼게 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2)-방언들 통역함

방언들 통역함이란 방언을 들을 때 그것이 모국어를 듣는 것처럼 들리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주의할 것은 이것은 해석이 아니다.

어떤 분은 통역을 한다고 하면서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전 14장을 잘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방언의 참된 특징과 예언의 참된 특징에 대해

각각 잘 비교하면서 설명해주고 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고전14:2-4)

방언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통역이 사람에게 설교하듯이 나오는 것은 올바른 통역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3)-예언함

교회 사람들이 가장 잘 오해하는 은사 중에 하나가 성령께서 주시는 예언의 은사이다.

예언이란 ‘권면과 위로의 은사’이다.

성령이 주시는 예언의 은사에 중요한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돕는 것’이고

둘째, 진리를 깨닫고 믿음이 강해지도록 돕는 것이고,

셋째,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소망을 가지고 환난 가운데 인내하도록 돕는 것이다.

다른 모든 은사들과 마찬가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올바로 예언의 은사가 사용될 때 믿음의 공동체는 더욱 견고해지고 성장해갈 수 있다.

● 은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사랑을 따라 구하라…”(고전14:1)

칼은 좋은 것이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줄 수도 있고

아니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임으로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

성령의 은사 역시 받는 것보다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받기는 했는데 잘 사용하지 못함으로 은사가 소멸되기도 한다.

성령께서 일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단회적 경험으로 끝나버리느냐,

아니면 지속적으로 성령의 나타내심을 경험하면서 지속적으로 유익을 누리느냐?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해 배워야 한다.

첫째, 사랑을 추구해야 한다.

은사를 사모하되 은사만 사모하면 안된다.

사랑을 따라 사용되지 않는 은사는 매우 위험한 것이 될 수 있다.

자신과 예배공동체 모두에게 상처와 고통을 줄 수 있다.

둘째, 성경의 권위 아래 복종해야 한다.

성경을 읽고 묵상함으로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보다 더 높은 은사는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교회의 유익을 추구해야 한다.

방언의 은사는 개인의 덕을 세우는데 유익하지만

그 외 모든 은사들은 다 개인보다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은사들이다.

방언의 은사라 할지라도 개인의 유익을 교회의 유익을 해치는 방식으로 남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넷째, 영적질서를 잘 지켜야 한다.

특히 예언의 은사가 그렇고 병고치는 은사들도 그렇다.

내게 능력이 있다고 무조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은사를 무질서하게, 남용하기 시작하면 성령의 은사는 더 이상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교회에도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있고, 은사를 집행하고 실행하는 데에도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가 있다.

이러한 질서를 잘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 은사를 경험하고 실행하는 것보다 먼저이다.

다섯째,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

성령의 은사가 위험할지라도 그것을 사모하며 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사랑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사랑을 추구한다고 은사를 사모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성경의 가르침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그릇이요

은사는 그릇에 담는 내용이다.

은사 없는 사랑은 무기력하고,

사랑 없는 은사는 위험한 것이다.

성령께서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 주시기 전에 가르쳐주실 것을 기대해야 한다.

성경에서도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사모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할 증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내 삶 가운데 성령의 임재가 뚜렷하게 나타나서

내 삶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힘있게 증거하는 삶을 살기를 열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를 내려 주시든 안 내려주시든 언제나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당연한 것이다.

여섯째, 지체의식을 가져야 한다.

내가 어떤 은사를 경험할 때 내가 경험한,

혹은 내가 받은 그 은사가 최고인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내가 갖지 못한 다른 은사들을 우리는 또한 사모해야 하며,

내가 갖지 못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잘 섬기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축복해야 하며,

나와 다른 은사를 가진 이들과 협력하여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길 줄 알아야 하고,

나와 다른 은사를 진심으로 존중히 여기며 그들과 연합하여 사역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일곱째,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은사를 가진 사람은 교만해지기 쉽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의 놀라운 은사가 나타나고 경험이 되어지면 순간적으로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된 것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가 아니면 우리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인생이요 벌레보다 못한 비참한 인생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사를 허락하시는 것은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따라서 은사를 가진 사람은 은사를 갖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을 무시하여서는 안 되며

그들을 섬기라고 이러한 은사를 내려주셨음을 깨닫고 그들의 아래로 내려가서 그들을 우러러보며

그들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며 섬기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서로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은 지체임을 확인하면서

은사를 사용할 때 은사를 남용함으로 자신과 공동체에 상처를 입히는 어리석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오래 동안 은사를 누릴 수 있고 은사를 가지고 섬길 수 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성령의 은사(The Gifts of the Spirit)

성경에는 남자와 여자가 성령님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사례들로 가득하다. 신약 성경에서 이런 초자연적인 능력은 “성령의 은사”라고 불린다. 이런 은사들은 획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선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사용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 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신뢰성을 입증한 사람들에게 주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예상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런 종류의 사람들을 초자연적으로 사용하실 가능성이 더 크므로 온전히 성별 되고 성령님께 복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한 면으로, 하나님은 어느 한 번 당나귀를 예언자로 사용하셨는데 그분은 원하시면 누구든지 사용하실 수 있다. 만일 그분께서 우리가 완벽하게 되어야만 사용하실 수 있다면 우리 중 누구도 사용하실 수 없을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신약 성경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열되어 있는데 모두 9가지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고전 12:8-10).

각각의 은사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께 성령의 은사로 쓰임 받는 것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구약의 선지자, 제사장, 왕, 그리고 초대 신약 교회의 목회자들은 성령의 은사를 분류하거나 정의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이 없었지만 모두 성령의 은사대로 쓰임 받았다. 그럼에도, 신약 성경에서 성령의 은사를 분류한 것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 분명하다. 사실, 바울은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고전 12:1)라고 썼다.

9가지 은사에 대한 분류(The Nine Gifts Categorized)

성령의 9가지 은사는 현대에 와서 사람들에 의해 세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1) 말하는 은사, 즉 각종 방언을 말함, 방언의 통역, 예언; (2) 계시의 은사: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 그리고 (3) 능력의 은사: 기적을 행함, 특별한 믿음, 치유의 은사이다. 그 중 세 가지 은사는 뭔가를 말하는 것이고; 세 가지는 뭔가를 계시하는 것이고; 세 가지는 뭔가를 행하는 것이다. 이 은사 중 각종 방언을 말하는 은사와 통역하는 은사를 제외한 모든 은사는 구약에서 볼 수 있다. 그 두 가지는 신약에만 있는 독특한 은사이다.

신약 성경에는 “능력의 은사”를 어떻게 적절하게 사용할지에 대한 가르침이 없으며 “계시의 은사”를 어떻게 적절할지에 대한 가르침도 아주 적다. 그러나 “말함의 은사”의 적절한 사용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양의 가르침이 바울을 통하여 주어진다. 그 이유는 아마도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첫째로, 교회 모임에서 “말함의 은사”가 가장 많이 나타나고, “계시의 은사”는 적게 나타나며, “능력의 은사”는 가장 드물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모임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은사에 대한 가르침을 제일 많이 필요로 할 것이다.

둘째로, “말함의 은사”는 사람들 사이의 협력에 대한 요구가 가장 높아 보이기 때문에 잘못 다뤄지기 가장 쉽다. 치유의 은사를 파괴하기보다는 예언을 파괴하기가 훨씬 쉽다.

성령님의 뜻을 따라 (As the Spirit Wills)

성령의 은사가 사람이 아닌 성령님의 뜻을 따라 주어진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은 이것에 대해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11 강조 추가).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 2:4 강조 추가).

사람이 특정 은사로 자주 쓰임 받을 수는 있으나 어떤 은사도 소유할 수는 없다. 당신이 어느 한 번 기적을 행하도록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하여 당신이 원할 때마다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당신이 앞으로 기적을 행할 수 있음을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각 은사에 대한 성경의 몇 가지 예를 간단히 알아볼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무한한 방법으로 그분의 은혜와 능력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각각의 은사가 매번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성경에서 이 9가지 성령의 은사에 대해 정의 내린 적도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다만 그것들의 명칭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지 성경의 예를 살펴보고 각각의 은사가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를 결정함으로써 표면적인 차이에 의해 그것들을 정의 내릴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초자연적인 은사를 통하여 그분 자신을 나태내는데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기에 우리가 내린 정의에 지나치게 엄격한 것은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부 은사들은 실제로 몇 가지 은사들의 조합과 같을 수도 있다.이러한 맥락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4-7, 강조 추가).

능력의 은사(The Power Gifts)

1) 치유의 은사: 치유의 은사는 분명히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것과 관계된다. 그들은 종종 갑작스럽게 육체적으로 아픈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받으며, 나는 그것에 대한 어떠한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 이전 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베데스다 못 가의 앉은뱅이를 치유할 때 그분을 통해 치유의 은사가 나타난 예를 살펴본 적이 있다(요 5:2-17을 보라).

하나님은 엘리사를 사용하셔서 우상 숭배자인 나병 환자 나아만을 치유하셨다(왕하 5:1-14을 보라). 우리가 누가복음 4장 27절에서 나아만이 치유받은 것에 관해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엘리사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어떤 나병환자든지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갑자기 초자연적인 영감을 받아 나아만에게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지시했던 것이며 나아만은 결과적으로 순종함으로 인해 나병으로부터 깨끗해졌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사용하셔서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치유하셨다(행 3:1-10). 이 초자연적인 기적은 앉은뱅이를 치유하였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베드로가 선포한 복음을 듣도록 인도하였으며, 그날 약 오천 명의 사람이나 교회에 추가되었다. 치유의 은사는 종종 병든 사람을 치유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두 가지 목적을 이루는데 사용된다.

베드로는 그날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 3:12).

베드로는 하나님이 이 앉은뱅이를 치유하신 이유가 그의 개인적인 권능이나 경건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 기적을 행하기 두 달 전만 하여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고백했었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도행전의 첫 부분에서 베드로를 기적적으로 사용하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원하시면 우리도 사용하실 것이라는 신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베드로가 그 사람이 치유받은 이유를 설명하려 할 때, 그것을 “치유의 은사”로 분류했을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인다. 베드로가 알고 있었던 것은 그와 요한이 앉은뱅이 곁을 걸어 지나가려고 할 때 갑자기 자신한테 그 사람이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하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앉은뱅이는 곧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베드로는 이 상황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 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6).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면서 그가 걷기를 기대하는 것에는 특별한 믿음이 필요하다! 이런 특별한 치유의 은사와 함께 믿음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치유의 은사가 복수인 것은(치유의 “은사들”을 가리킴) 다른 병을 치유하는 은사도 다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치유의 은사로 자주 쓰임 받은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사역 속에서 특정한 병을 다른 병보다 더 자주 치유했음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복음 전도자 빌립은 특별히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행 8:7)을 치유하는데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난 몇 세기 동안, 어떤 복음 전도자들에게는 치유의 은사가 실명과 난청, 그리고 심장 질환과 같은 병을 고치는 데에 가장 자주 나타났다.

2) 믿음과 기적을 행하는 은사: 믿음과 기적을 행하는 은사는 매우 유사해 보일 것이다. 이 두 은사를 받은 사람은 갑자기 불가능한 일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 두 은사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믿음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자기가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는 믿음을 갖게 되지만,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적을 베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믿음의 은사를 때로는 “특별한 믿음”이라고도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일반적인 믿음을 뛰어넘은 갑작스럽게 받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들음에서 생기지만, 특별한 믿음은 성령님에 의한 갑작스러운 전이에서 생긴다. 특별한 믿음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일들이 갑자기 가능해 보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사실, 그들은 의심 자체를 할 수가 없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기적을 행하는 믿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이야기는 “특별한 믿음”이 어떻게 사람으로 하여금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그들이 왕의 우상 앞에 절하기를 거부함으로 인해 불타는 풀무불에 던져질 때, 그들은 모두 특별한 믿음의 은사를 받았다. 풀무불에 던져져도 살 수 있다는 믿음은 일반적인 믿음을 초월한 것이다! 이 세 젊은이가 왕 앞에서 보여준 믿음을 살펴 보도록 하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6-18, 강조 추가).

그들이 풀무불에 던져지기 전에 믿음의 은사를 받았음을 주목하라.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건져내실 것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엘리야가 아합 왕의 통치 시절 3년 반 동안의 기근 속에서 날마다 까마귀들이 날라온 음식을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특별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왕상 17:1-6). 하나님께서 새를 사용하셔서 아침저녁으로 음식을 날라오게 한다는 것을 믿는 것은 일반적인 믿음을 초월한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까마귀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날라다 줄 것이라고 말씀으로 약속하신 적은 없지만, 우리는 일반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분의 약속이기 때문이다(마 6:25-34을 보라).

기적을 행하는 믿음은 모세의 사역 속에 꽤 자주 나타났다. 모세는 애굽 홍해를 가를 때(출 14:13-31을 보라)와 애굽에 여러 재앙을 내릴 때 이 은사를 사용하였다.

예수님은 물고기 몇 마리와 떡 몇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실 때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사용하셨다(마 14:15-21을 보라).

바울이 실루기아 섬에서 사역을 방해하는 엘루마라 하는 마술사를 얼마 동안 맹인이 되게 한 것도 기적을 행하는 믿음의 예이다(행 13:4-12을 보라)

계시의 은사(The Revelation Gifts)

1). 지식의 말씀과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종종 과거 또는 현재의 특정 정보에 대한 갑작스럽고 초자연적인 전이로 정의된다. 모든 지식을 소유하신 하나님은 어떤 때에 사람에게 지식의 작은 부분을 나누어 주시는데 아마도 이 때문에 그것을 지식의 말씀이라고 부를 것이다. 한 단어가 문장의 단편적인 부분인 것 처럼, 지식의 말씀도 하나님의 지식의 단편적인 부분일 것이다.

지혜의 말씀은 지식의 말씀과 매우 비슷하지만, 그것은 종종 미래의 사건에 대한 갑작스럽고 초자연적인 전이로 정의된다. 지혜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미래에 관한 것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다소 추측 적이다.

지식의 말씀에 관한 구약 성경의 예를 살펴보자. 엘리사가 시리아인 나병환자 나아만을 치유한 후, 나아만은 그를 치유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엘리사에게 큰 금액의 돈을 주었다. 엘리사는 그 예물을 거절하였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나아만이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받은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샀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개인적인 재물을 얻을 기회를 엿보았고 비밀리에 나아만의 의도된 돈을 받았다. 게하시가 자신의 거짓 획득은 숨겨둔 후, 엘리사 앞에 나타나며 우리는 다음 구절을 읽게 된다.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왕하 5:25하-26상).

게하시의 추한 행위를 다 아시는 하나님은 그 사실을 엘리사에게 초자연적으로 드러내셨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엘리사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가지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즉, 그가 항상 모든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그런 경우였다면, 게하시가 자신의 죄를 은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때때로 그에게 그런 일들을 계시하실 때에만 알 수 있었다. 그 은사는 성령님의 의지대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지식의 말씀으로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자에게 그녀가 다섯 남편이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요 4:17-18을 보라).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을 판 돈 전부를 교회에 바쳤다고 회중들에게 거짓말한 것을 알았던 것도 이 은사로 쓰임 받은 것이다(행 5:1-11을 보라).

지혜의 말씀의 은사에 관해서, 우리는 구약의 모든 선지자를 통하여 이 은사가 자주 나타남을 볼 수 있다. 그들이 미래의 사건을 예측할 때마다 지혜의 말씀으로 한 것이다. 예수님도 꽤 자주 이 은사를 받으셨다. 그분은 예루살렘의 파괴와 그분의 십자가 처형과 그분이 재림하시기 전에 이 땅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예언하셨다(눅 17:22-36, 21:6-28을 보라).

사도 요한은 환난의 심판을 계시받을 때 이 은사로 쓰임받았다. 그는 요한 계시록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2).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는 종종 영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거나 분별하는 갑작스럽고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정의된다.

신자가 눈과 마음을 통해 본 비전도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로 분류될 수 있다. 이 은사는 바울이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경험한 것처럼(행 18:9-10; 22:17-21; 23:11을 보라) 신자로 하여금 천사, 마귀, 심지어 예수님 자신도 볼 수 있게 해준다.

엘리사와 그의 사환이 아람 군대에 쫓겨 도단에 갇혀있을 때, 그의 사환이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음을 보고 근심에 잠겼었다.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 6:16-17).

당신은 천사가 영적인 말과 영적인 병거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언젠가는 천국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사의 사환은 그것을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이 은사를 통하여, 신자는 사람을 억압하는 악령을 분별할 수 있으며 그 영이 어떤 종류의 영인지도 알아낼 수 있다.

이 은사는 영적인 영역의 일들을 볼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영적인 영역을 분별할 수도 있게 한다. 예를 들어,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영적 영역에서 무언가를 듣는 것을 포함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은사는 “분별의 은사”가 아니다. 이 은사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의 은사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판의 은사이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은사”이다. 사실은, 구원받기 전에 당신은 그 “은사”를 가졌을 수 있지만, 구원받은 지금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것으로부터 영원히 건져내고 싶어하신다.

말함의 은사(The Utterance Gifts)

1). 예언의 은사: 예언의 은사는 말하는 자가 자신의 언어로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말하는 갑작스럽고 초자연적인 능력이다. 그것은 “주님이 말씀하시기를”이라는 말로 자주 시작한다.

이 은사는 설교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영감을 받은 설교와 가르침은 성령님의 기름 부음을 받았기에 예언의 요소를 포함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예언은 아니다. 많은 경우, 기름 부음을 받은 설교자나 교사는 그들이 계획하지 않은 말을 갑작스러운 영감에 의해 말하게 되는데 그것은 예언이 아니다. 비록 나는 그것을 예언적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예언의 은사는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고전 14:3).

따라서 예언의 은사 그 자체에는 어떠한 계시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즉, 그것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과 달리 과거, 현재, 또는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계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이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성령의 은사는 서로 함께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지혜의 말씀이나 지식의 말씀은 예언을 통해 전달될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가 집회에서 미래의 사건을 예언하는 것을 들었을 때, 예언만을 들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언의 은사를 통해 지혜의 말씀을 들었다. 예언의 은사는 마치 사람이 “너희는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라는 성경 속의 권면을 읽는 것처럼 들려진다.

일부 사람들은 신약 성경의 예언은 “부정적인 것”은 무엇이든지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여야 한다는 특성에 맞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하시려는 말씀을 제한하기 위해서 그들은 자기들이 책망을 받아 마땅한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이 생각하기에 “긍정적인” 것만 말씀하시도록 허용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높이는 것이다. 책망은 확실히 덕을 세우고 권면하는 범주에 속한다. 나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메시지 속에 확실히 책망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그런 책망들을 버려야 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2). 각종 방언과 통역의 은사: 각종 방언의 은사란 갑자기 초자연적으로 자신이 알 수 없는 언어로 말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 은사에는 일반적으로 통역의 은사가 동반되는데 통역의 은사란 알 수 없는 언어로 말한 것을 갑자기 통역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말한다.

이 은사는 방언의 번역이 아닌 방언의 해석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방언의 메시지를 단어마다 번역하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 이유 때문에 짧은 “방언의 메시지”와 긴 통역이 있을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통역의 은사는 예언과 매우 비슷하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도 계시를 포함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14장 5절에 따라 방언에 통역의 은사를 더하면 예언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내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에는 능력의 은사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가르침이 없으며 계시의 은사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도 매우 적으나 말함의 은사에 대한 가르침은 매우 많다. 왜냐하면, 말함의 은사에 있어서 고린도 교회에 약간의 혼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 문제에 대해서 거의 고린도전서14장 전부를 할애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방언의 적절한 사용에 관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령 세례에 대한 장에서 배운 것처럼, 성령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는 원하면 언제든지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교회 예배 중에 방언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은 질서가 없었다.

방언의 다른 용도(The Different Uses of Other Tongues)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언에 대한 공용 사용과 개인 사용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비록 성령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가 언제든지 방언으로 말할 수는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중적인 방언의 은사로 사용하시리라는 것은 의미하지 않는다. 방언의 기본 용도는 각 신자의 개인적인 신앙생활이다. 그러나 고린도인들은 함께 모여 통역이 없이 동시에 방언을 말하였다. 물론, 아무도 그것을 통하여 도움을 받거나 덕을 세우지 못했다(고전 14:6-12, 16-19, 23, 26-28을 보라).

방언의 공용 사용과 개인 사용을 구별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개인 사용을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공용 사용을 방언으로 말하는 것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두 가지 사용에 대해 모두 언급하고 있다. 차이점이 무엇일까?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고전 14:2, 14을 보라). 그러나 누군가가 각종 방언의 은사를 갑자기 받았을 때,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교회를 향한 메시지이며 일단 통역이 주어지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전 14:5을 보라).

성경에 따르면, 우리가 원하면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지만(고전 14:15을 보라), 각종 방언의 은사는 성령님의 뜻대로 주신다(고전 12:11을 보라).

각종 방언의 은사에는 일반적으로 통역의 은사가 동반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하는 방언 기도는 일반적으로 통역되지 않는다. 바울은 그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에는 그의 마음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말했다(고전 14:14).

한 개인이 방언으로 기도할 때에는 단지 그만이 덕을 세우게 된다(고전 14:4을 보라). 그러나 각종 방언의 은사가 통역과 동반하여 나타날 때에는 전체 회중이 덕을 세우게 된다(고전 14:4후-5을 보라).

모든 신자는 주님과의 일상적인 교제의 일환으로 매일 방언으로 기도해야 한다. 방언기도에 대한 놀라운 것들 중 하나는 그것이 당신이 마음을 사용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당신의 마음이 직장이나 다른 것들에 점유되어 있을 때에도 방언으로 기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 강조 추가)라고 말했다. 그가 방언을 말하는데 보낸 시간이 전체 고린도 교회를 능가했음이 틀림없다!

바울은 또한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 종종 “주님을 축복하게 된다”(고전 14:16-17)라고 썼다. 내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이 내가 “기도하는 언어”를 이해했던 적이 세 번 있었다. 나는 세 번 모두 일본어로 말하고 있었다. 한 번은 내가 일본어로 주님께 “당신은 아주 좋습니다”라고 말했고 다른 한 번은 “매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 번은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놀랍지 않은가? 나는 일본어를 배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적어도 세 번이나 일본어로 “주님을 축복하였다!”

방언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Paul’s Instructions for Speaking in Tongues)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어떠한 모임에서든지 대중적으로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허용된 사람의 인수는 두 명 또는 세 명에 국한되었으며 방언을 할 때 모두 한 번에 말하지 말고 차례를 따라 기다렸다가 말해야 한다(고전 14:27을 보라).

바울은 단지 세 “방언의 메시지”만 허용된다고 의미한 것이 아니라 세 명 이상의 사람이 특정 예배에서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음을 의미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각종 방언의 은사로 자주 쓰임 받는 사람이 세 명 이상이라면, 그 중의 누구라도 성령님께 순복하여 성령님이 교회에 나타내고자 하는 “방언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바울의 가르침은 실제로 특정 모임에 나타날 수 있는 방언의 메시지를 제한함으로써 성령님을 제한하게 된다. 만일 성령님이 한 모임에서 세 명 이상에게 각종 방언의 은사를 주시지 않는다면, 바울이 이런 가르침을 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방언의 통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은 회중 중에 아마도 한 명 이상은 성령님께 순복하고 “방언의 메시지”를 통역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통역의 은사로 자주 쓰임 받기 때문에 “통역하는 자”로 간주된다(고전 14:28을 보라).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바울이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고전 14:27)라고 가르칠 때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단지 한 사람만이 모든 방언의 메시지를 통역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는 같은 메시지에 대해 “경쟁적인 통역”을 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 것이다. 만일 한 통역하는 자가 하나의 방언의 메시지를 해석했으면, 다른 통역하는 자는 자기가 더 나은 통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같은 메시지를 통역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교회 모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적절하고 질서 있게” 진행되어야 하며 동시적이고 혼란스럽고, 심지어 경쟁적인 발언으로 뒤죽박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신자들은 바울이 쓴 것처럼, 그들의 모임에 함께 있을 수 있는 모든 불신자들에 대해 민감해야 한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고전 14:23).

그것은 정확히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이었다 – 사람마다 동시에 방언을 하였으며 거기에는 종종 어떠한 통역도 없었다.

계시의 은사에 관한 몇 가지 지침(Some Instruction Concerning Revelation Gifts)

바울은 선지자를 통해 나타나는 “계시의 은사”에 관해 몇 가지 지침을 주었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고전 14:29-33).

고린도 교회의 지체 중에 통역의 은사로 자주 쓰임 받는 “통역하는 자”들이 분명히 있듯이, 거기에는 예언과 계시의 은사로 자주 쓰임 받는 “선지자”로 여겨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구약 성경의 선지자거나 신약 성경의 아가보(행 11:28; 21:10을 보라)와 같은 선지자와 같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사역은 지역 교회의 지체들에게 국한되었을 것이다.

비록 교회 모임에 이 같은 선지자가 세 명 이상 있을 수 있지만, 바울은 예언 사역을 하는 인수를 “둘이나 셋”으로 제한하였다. 이것은 다시 한 번 성령님이 모임에서 성령의 은사를 주실 때, 한 명 이상의 사람이 순복함으로써 그런 은사들을 받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만약 그렇다면, 바울의 지침은 어떤 신자들로 하여금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얼마나 많은 선지자가 말할 수 있는지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만일 모임에 세 명 이상의 선지자가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비록 말하는 것으로부터 억제당했지만, 말해지는 내용을 분별함으로 도울 수 있었다. 이것은 또한 그들이 성령님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나타내며 어쩌면 그들이 다른 선지자를 통해 나타나는 예언의 은사에 쓰임을 받도록 성령님께 순복했음을 암시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성숙한 신자가 할 수 있듯이, 단지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이미 보여주신 계시와 맞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같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예언과 계시를 분별할 수 있다.

바울은 이러한 선지자들이 차례대로 모두 예언할 수 있으며(고전 14:31을 보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는다”(고전 14:32)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각 선지자가 성령님으로부터 회중들과 함께 나눠야 할 예언과 계시를 받았을 때에도 다른 선지자를 방해하지 않도록 자신을 억제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성령님이 모임 중에 있는 여러 선지자에게 동시에 은사를 주실 수 있으며 각 선지자가 이런 계시거나 예언을 지체들과 나눌 때에는 자신을 제어할 능력이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것은 말하는 은사가 어느 신자를 통해 나타나든지에 관하여도 마찬가지다. 만일 한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방언이나 예언의 메시지를 받았다면, 그는 모임에서 말하기 적절한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예언이나 가르침을 방해하면서 자신의 예언을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바울이 “너희는 다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고전 14:31)라고 주장할 때, 그는 예언을 받은 선지자의 맥락에서 말한 것임을 기억하라. 일부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문맥을 무시하고 바울의 말이 모든 신자는 신자들의 모든 모임에서 다 예언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예언의 은사는 성령님의 뜻을 따라 주어진다.

오늘날, 교회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성령님의 도우심과 능력과 임재와 은사가 필요하다. 바울은 고린도 신자들에게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우리의 사모하는 정도가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과 연관이 있음을 나타낸다. 그렇지 않으면 바울은 이러한 가르침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제자 삼는 사역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분께 쓰임 받기를 사모하며, 진심으로 영적인 은사를 사모할 것이며 그들의 제자들도 똑같이 하라고 가르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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